《방학 끝. 아이들은 엄마의 잔소리로부터 해방될 날도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방학이 끝난다고 엄마의 잔소리가 끝나는가. 천만에. 초등학생은 그렇다고 해도 중학생을 향한 엄마의 잔소리는 종종 ‘전쟁’을 일으킨다.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이 잔소리에 적극적으로 반항하기 때문이다. 중학생 자녀를 둔 엄마 두 명이 만나 잔소리를 화제로 얘기했다. 이들은 서울 강남의 ‘공부 잘하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의 ‘어머니 클리닉’에서 만난 사이.
이애경(44·경기 성남시 분당구 서현동)=중 2 딸
이선희(42·서울 강남구 대치동)=중 3, 중 1 아들》
●우리 아이는 요즈음 …
▽이선희=작은애가 중학교에 들어가 중간고사를 보고 나서야 공부를 못하는 줄 처음 알았어요. 그러자 제가 그동안 직장생활한 것이 잘못인가 하는 회의가 들었습니다. 큰애와 비교하다보니 작은애 자신도 주눅이 들고요.
▽이애경=1학년 2학기 중간고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어요. 한바탕 전쟁을 치렀지요. 아이는 아이대로 후회하고. 저는 엄마로서 조금만 더 받쳐줬으면 아이가 더 나은 성적을 받을 수 있었을텐데 하는 자책감이 들었어요.
▽이선희=아이가 잘못한 것에 매달려 잔소리를 할 것이 아니라 잘하는 것을 보아야 하는데 그러자니 속이 터져요. 그러나 내가 바뀌지 않으면 안되지,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때 내가 어떻게 그 애를 대했나 생각도 해보고.
▽이애경=2학년이 되니 이 과목은 이 학원, 저 과목은 저 학원 하면서 보내달라고 해요. 눈이 뜨이나 봐요.
▽이선희=아이 자신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아무리 학원을 보내도 소용 없어요. 부모로서는 학원에서 배운 것을 얼마나 받아들이는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지 않겠다는 것은 시키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아이가 자신이 세운 목표 앞에 금방 주저 앉고, 엄마로서 그걸 보면서 잔소리하지만 역시 불쌍해요.
●잔소리의 뜻
▽이선희=아이의 결점을 보고 “너를 위한 거야” “받아들여”라는 말을 반복하지요. 이게 바로 잔소리고요.
▽이애경=사전에는 잔소리가 ‘듣기 싫은 말을 여러번 반복해 하는 말’이라고 나와 있지요. 한번 하면 되는 말을 계속하는 거요. 그러나 그것은 듣는 사람 입장이고 말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잔소리가 아니에요. 엄마입장에서는 바로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으면 또 얘기하고 그래서 잔소리가 되지요. 딸애는 중 2가 되면서 사춘기가 찾아온 것 같아요. 목소리가 커지고 “알았어”하고 반말하거나 대꾸하고 따지고.
▽이선희=제가 잔소리 백번 하는 것보다 남편이 10분 얘기하는 게 효과적이에요. 애들이 아빠에게서는 위압감을 느끼나봐요. 잔소리를 하다보면 제가 화가 치밀어 처음 시작했던 의도가 변질돼 버려요. 그래서 잔소리의 끝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지요. 엄마와 붙어있는 시간이 많아서 그런지 아빠가 얘기하는 것만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또 시작이네”“또 하네”정도로 생각하지요.
▽이애경=어느날 딸애에게 제가 어느 정도 잔소리를 하나 물어봤어요. 중간정도라나요. 저는 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왜 엄마를 나쁜 엄마로 만드는지 속상해요. ▽이선희=아이들은 잔소리가 당장 지겹고 쓸데없는 소리라고 생각될 거예요.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잔소리가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고 볼 수 있어요. 제가 저 혼자 큰 것 같이 굴지만 엄마가 어느 순간 저를 올바로 고쳐놓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는 아이들은 어디가 달라도 다르잖아요. 아이들은 어른들의 잔소리 속에서 많이 배워요.
●잔소리의 주제
▽이애경=딸애 생활태도를 두고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아침 눈 떴을 때부터 잠잘 때까지 계속되지요. 제가 딸애에게 많이 하는 소리가 “옷 걸었니?”와 “여자아이가”입니다. 딸애는 ‘금방 또 입을 것인데 왜 또 걸어’하는 생각인 것 같고 저는 저대로 ‘여자아이인데 정리정돈하는 생활습관을 들이면 좋다’고 생각하지요. 딸애는 저더러 “엄마는 맨날 여자여자한다”며 듣기 싫어해요.
▽이선희=저도 어려서 ‘여자니까’란 말을 싫어했어요. 지금도 남녀는 평등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이 나이가 되니 여자에게 필요한 덕목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애경=딸애에게 식사 후 자기가 먹은 그릇을 설거지통에 담그도록 일러뒀어요. 근데 왜 그 애 밥공기는 물에 동동 뜨는지…. 밥공기를 조금 기울이든가 물을 조금만 뜨면 될 것을. 그러니까 또다시 잔소리를 하게 되지요.
▽이선희=저의 잔소리거리는 눈에 보이는 것 모두예요. “왜 그렇게 걷니” “왜 식탁에 팔을 올리고 밥을 먹니” “왜 샤워 안 하니” “왜 빨리 하고 나오지 않니” “왜 머리부터 감지 몸부터 씻니” 등등. 잔소리를 하다보면 내 인생이 없는 것 같아요.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공부하라는 잔소리가 가장 많지요. 아침부터 공부해라 공부해라….
●잔소리 성공담?
▽이애경=딸애가 일주일에 한번 플루트를 배우는데 미리 연습을 해요. 그런데 스스로 알아서 하지 않으니 자꾸 “너 플루트 연습했니”하고 몇 번이나 묻게 돼요. “했다”는 대답에도 “정말 했니”라고 자꾸 확인하니 아이는 아이대로 짜증이 날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아이를 믿고 묻지 않기로 했어요. 물어보고 싶으면 제가 좋아하는 조성모 노래를 듣지요. 아이가 어떤 때는 “노래 듣지마”하면서 플루트 연습하는 것을 보면 직접적인 충돌은 피했구나 싶어요.
▽이선희=잔소리를 하다하다 큰애와 충돌하면 서로 화가 많이 나지요. 나중에는 인신공격까지 하고. 끝나 보면 서로에게 도움이 안되고 상처만 남아요. 그래서 언젠가 큰애에게 “엄마가 잔소리가 심해져 네가 화가 나려고 하면 ‘엄마, 심호흡 하세요’라고 적신호를 보내라. 그러면 내가 받아들이겠다”고 당부했어요. 그 뒤 얼마 안돼 한참 서로 화를 내고 있는데 “엄마, 한숨 쉬고 하세요”라고 하대요. 그래서 제정신 차리고 충돌을 모면했지요.
큰애가 중3이 되고 나서 자신의 꿈을 적은 것을 보니 ‘피아노를 잘 치고 싶다’고 하대요. 초등학교 때 ‘피아노학원을 보내달라’고 하도 졸라서 ‘바이엘만 끝내고’라고 한 적이 있는데 ‘바로 지금 시켰어야 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공부도 마찬가지인 것 같아요. 자신이 목마를 때 시켜야지요. 생명공학을 전공하는 동네 형을 소개해줬더니 작은애가 쫓아다니며 관심을 나타내요. 이같이 여건이나 분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잔소리를 되풀이하는 것보다.
김진경기자 kjk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