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상선이 대북 경협사업권을 법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는 협약서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전 북측에 2235억원을 송금한 것으로 5일 확인됐다.
현대상선이 2235억원을 대북사업에 사용했다는 근거로 지난달 28일 감사원에 제출한 북한과의 기본협약서 1부와 세부협약서 7부 가운데 체결날짜가 가장 빠른 것이 남북정상회담일의 2개월쯤 뒤인 2000년 8월 21일이었다. 이 때문에 이 돈은 경협자금이 아니라 정상회담의 대가였다는 의혹이 더 커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감사원은 현대상선이 협약서에 서명하기 두 달이나 앞서 2235억원을 북한에 송금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관계자들을 불러 경위를 따져보지 않았다”며 “북측의 약속이행을 담보할 수 있는 문건을 단 1장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거액을 송금했다는 것은 거래 관행상 이해가 되지 않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현대상선측은 이에 대해 “대북사업은 협약서가 체결되는 데 상당한 시일이 걸리는 만큼 대북 송금은 협약서 체결을 위한 사전 자금의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산업은행이 2000년 6월 7일 현대상선에 4000억원을 대출해 준 경위와 관련해 박상배(朴相培·당시 영업1본부장) 산업은행 부총재는 감사원 조사에서 “당시 김충식(金忠植) 현대상선 사장이 찾아와서 빌려달라고 했고 이근영(李瑾榮·현 금융감독위원장) 산은 총재와 협의한 결과 빌려주는 게 좋겠다고 해서 대출하게 됐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