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위한 약속/로버트 라이시 지음 김병두 옮김/172쪽 9900원 김영사 펴냄
“저는 귀하가 제 돈을 가지고 한 일에 불만이 많습니다. 저는 단순히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주일 뿐만 아니라 미국 국민의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제가 보유하고 있는 주식의 수익성을 극대화하는 것 이상의 더 소중한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극소수의 대기업들이 지배하는 나라에서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아무리 제가 주주로 있는 회사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필자가 참여연대 사무처장으로 일할 1998년 당시 대기업에 1조원이 넘는 돈을 제대로 된 담보도 없이 빌려주었다가 떼인 한 은행을 상대로 소액주주운동을 벌인 적이 있다. 주주총회에 참석해서 경영진에 따지기 위해 그 은행 문을 들어섰을 때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었다. 소액주주들이었다. 이들은 기실 주주총회에 참석해 경영상황을 점검하고 경영진에게 발언을 하러 온 것이 아니라 모두 주주총회 기념품을 받고는 곧바로 돌아가 버렸다. 단기 차익만을 노린 소액주주, 주총 기념품 챙기는데 급급한 소액주주 - 이런 사람들은 건강한 기업, 수익성 높은 기업, 그럼으로써 높은 투자수익을 보장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 결과는 외환위기 같은 국가적 재앙이기도 하였다.
로버트 라이시는 “미국 최대의 에너지사인 엔론의 파산은 무책임한 경영의 가장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엔론사 회계부정사태와 관련, 미국에서는 엔론사 로고에 ‘악인’이라는 글자를 그려넣은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기도 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마이크로소프트의 빌 게이츠 회장에게 한 사람의 주주로서, 그러나 그 이전에 미국의 한 시민으로서 위 편지를 쓴 사람은 행동하는 지성인 로버트 라이시이다. 클린턴 정부하에서 노동부장관을 지낸 참여파 사회사상가이자 학자이기도 하다. 그가 최근 펴낸 이 책(원제 I'll Be Short)에서는 현재의 미국사회를 예리한 통찰력으로 분석하고 있다. 기업의 수익이 늘어남에도 대량감원 임금삭감이 일상화되고 있고, 열심히 일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은 사회복지제도의 허점과 삶의 질의 하락으로 옛날이 되고 있으며, 누구나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공평한 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도 헛된 구호가 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눈에 비친 2000년 이후의 미국의 사회이다.
이 책에서 라이시는 단지 비판에 머물고 있지만은 않다. 그는 다양한 해결방안을 내놓고 있다. 기업이 윤리적 경영을 통해 사회적 책임을 다할 때 동시에 경제적으로도 번영하도록 해야 하며, 사회보장제도의 확충이 낭비가 아니라 생산성을 높이는 길이며, 평생교육과 진정한 가정의 가치를 진작시킴으로써 미국사회의 재건을 도모할 수 있음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시민들의 행동이야말로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지난 2년간 추락하고 있는 미국경제와 9·11테러 등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미국 국민들이 그동안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점들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바로 그 자신과 공동체를 위해 자신이 주주로 있는 기업에 편지를 보내고, 투표에 참여하고, 정치인에게 전화를 걸어 구체적 일에 참여해야 한다고 라이시는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고 있는 이 마지막 호소, 그 메시지는 이 땅의 침묵과 방관의 한국 국민들에게도 그대로 호소력을 가진다. 이 책은 미국사회를 다룬 것이지만 그 해결방법은 그대로 한국사회에도 적용되기 때문이다. 단숨에 읽어제낄 수 있는 170여페이지, 이 작은 책자로 우리가 얻는 것은 너무도 소중하다.
박원순 변호사·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