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수한 전라도 사투리에 이웃집 아저씨 같은 인상. 운동선수 출신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달변과 주위에 대한 배려. 스토브리그때마다 ‘태풍의 눈’으로 떠올랐던 선동렬이 은퇴 3년만에 지도자로 데뷔한다. 뒤의 판넬은 2년 연속 꿈의 0점대 평균자책을 기록하며 프로야구를 휘어잡았던 87년의 ‘젊은 선동렬’.박영대기자
야구계엔 속설이 많다. 그중 하나가 슈퍼스타는 명감독이 되기 힘들다는 것. 탄탄대로를 걸어온 스타일수록 외골수에 빠지기 쉬워 후보선수의 고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
선동렬(40·사진)은 이 말을 꺼내자 굳이 부인하려 들지 않았다. 올해부터 지도자의 길을 걷게 되는 그가 이 ‘직격탄’을 맞고도 바로 고개를 끄덕인 이유는 무엇일까.
“저라고 시련이 없었다고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일본 진출 첫 해인 96년은 그야말로 첩첩산중이었죠. 이 수모를 당하려고 일본에 왔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이번에 2군을 자청한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1군에 갈 수도 있었지만 2군에서부터 밑바닥 경험을 쌓기 위해서였죠.”
역시 딱 부러지는 대답이다. 은퇴후 3년간 지냈던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위원을 지난달 그만두고 오는 28일 일본으로 출국, 전 소속팀 주니치 드래건스의 2군 투수코치로 지도자에 입문하는 선동렬. 그는 일본프로야구 사상 첫 외국인 코치라는 진기록의 주인공이다.대만 출신인 다이에 호크스의 왕정치(일본명 오 사다하루)감독이 있긴 하지만 그는 은퇴후 일본의 ‘명예 국민’으로 국적을 취득한 뒤 코치가 됐다.
이처럼 선동렬은 언제 무슨 일을 하든 치밀한 계획아래 움직이는 스타일이다. 이런 그의 행동은 때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단적인 예로 그가 주니치에서 은퇴한 직후인 2000년초 KBO 홍보위원을 맡았을 때 주위에선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액의 광고 출연 제의와 각 구단의 러브콜이 쇄도했지만 그는 연봉 6000만원의 홍보위원을 선택했다. 이 정도면 보통 사람들에게는 꽤 괜찮은 직장이겠지만 ‘국보급 투수’의 품위 유지비로는 빠듯했다. 결국 3년간 집에는 한푼도 갖다주지 못했다.
“좀 더 많은 경험을 쌓기 위해서였습니다. 선수 시절 알지 못했던 야구행정과 사회생활의 공부를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죠. 광고는 딱 하나 찍었습니다. 프로야구 공식 스폰서인 삼성증권의 제의라 거절할 수 없었거든요.”
그러나 이런 선동렬도 최근 잇따른 감독 제의와 코치 유학을 놓고는 인간적인 고민을 많이 했다.
지난 겨울 사령탑의 대이동이 있었을 때 그는 영문으로 팀 이름을 사용하는 두 구단으로부터 코치도 아닌 감독 제의를 받았다. 넙죽 받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 그러나 다시 마음을 추스렸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그 구단의 전임 감독님과 팬들에 대한 생각이 앞섰구요. 지난 3년간 인스트럭터로 여러 구단을 돌아다니기는 했지만 정식 코치로서 경험을 쌓는 게 급선무였죠.”
유학은 사실 박용오 KBO 총재가 주선해준 미국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자녀의 교육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초등학교 때 반장을 놓치지 않았다는 그를 닮아 공부 잘하는 아들 민우가 이제 중학교에 입학하고 딸 민정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는데 또다시 해외로 나간다면 안될 것 같았다. 그래서 주니치로 방향을 틀었다. 가까운 일본은 가족을 국내에 두고 떠나도 한 번씩 찾아보기가 쉽기 때문이란다.
이유는 또 있다. 그는 이제 일본에선 언어 소통에 문제가 거의 없을 정도. 혼자서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것은 물론 선수 지도에도 어려움이 없다. 더구나 주니치의 명예 선수로 지난달 은퇴선수의 경기인 마스터스리그에서 나고야 경기에 출전했을 때 일본팬의 기립박수를 받았던 그다.
“어린 선수들도 선동렬 이름 석자는 알 정도가 되죠. 실력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대인관계에 신경을 썼던 때문입니다. 당시 한솥밥을 먹었던 이종범과 이상훈보다 오히려 일본 선수들과 식사를 더 자주 했죠.”
그는 올해 24세의 고야마 신이치로라는 젊은 투수가 ‘지도자 선동렬’의 성적표가 될 거라고 귀띔했다. 고야마는 불펜에선 시속 150㎞를 웃도는 강속구 투수지만 정작 마운드에만 서면 얼어붙는 새가슴. 선동렬이 한창 ‘나고야의 수호신’으로 활약할 때 같이 뛰었을 정도로 입단한 지는 꽤 됐지만 여태껏 ‘유망주’란 낡은 딱지를 떼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군에서 중간계투로 21경기에 나가 1승3패에 평균자책 4.81을 기록했고 최근 3년간 승수가 3승에 불과하다.
“주니치에서 저에게 고야마를 전담할 것을 지시했습니다. 2군에 다른 일본인 투수코치가 있긴 하지만 고야마는 노터치입니다. 컨디션이 좋을 때와 안 좋을 때의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큰 투수예요. 투구 밸런스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구력이 들쭉날쭉한 것도 집중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정신적인 면을 집중적으로 가르칠 계획입니다.”
‘열혈남아’로 알려져 있지만 마무리투수 출신으로 후반의 1점차 승부에 유난히 강한 호시노 센이치 전 주니치감독을 가장 닮고 싶다는 선동렬. 3년간의 ‘외도’를 끝낸 뒤 마침내 현역에 복귀하는 그가 선수 시절 못지 않은 훌륭한 지도자가 될 것을 의심하는 이는 드물 것이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