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7월 창단한 분당 아버지합창단이 4일 오후 한국마사회 장외발매소 강당에서 김신일 지휘자의 지도로 연습에 몰두하고 있다. -이훈구기자
아버지들이 뭉쳤다. 그들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마이 웨이(My Way)’를 열창했다. 이 곡은 거스 히딩크 전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애창곡. 월드컵의 감동이 되살아나는 듯 모두 벅찬 표정이었다.
다음에 ‘한강수타령’이 이어졌다. “한강수 깊고 맑은 물에 수상선 타고서 에루화 뱃놀이 가잔다. 에헤요….” 노래는 멈추지 않았다. 러시아 가곡 ‘아무르강의 물결’도 넘실거렸다.
4일 오후 8시 경기 성남시 분당의 한국마사회 장외발매소 강당. 이곳에서 ‘분당 아버지합창단’이 한창 입을 맞추고 있었다. 퇴근 후 ‘술 한잔’의 유혹을 떨쳐내고 어렵게 모인 이들은 이렇게 노래를 부르며 한 주간의 피로를 씻어낸다.
지난해 7월 5명으로 출발한 아버지합창단은 7개월 만에 40명으로 불어났다. 이날도 3명의 신입단원이 들어왔다.
창단 멤버인 동서의 권유로 입단한 이병무씨(50·경기 용인시 수지읍)는 “남자들만 모여 삭막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흥겨운 노래와 다양한 사람들을 접하는 즐거움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며 만족했다.
이씨의 말처럼 합창단엔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모여있다. 의사, 교수, 유치원 원장, 연구원…. 다양한 직업에다 30대부터 50대까지 나이를 뛰어넘은 이들은 ‘노래’를 매개로 뭉쳤다.
최고 열성파로 꼽히는 최고령자 송철옥씨(58·자영업)는 사업장이 있는 부산에서 매주 노래연습이 있는 화요일이면 분당을 찾는다. 그저 노래가 좋기 때문이란다.
“로또 복권보다 더 재미있는 것이 노래입니다. 오죽하면 단원 대부분이 노래하는데 방해가 된다며 담배를 끊었겠습니까.” 이희재 총무(43)의 말이다. 지난해 12월 성황리에 창단공연을 마친 뒤 노래에 쏟는 단원들의 열성이 더욱 고조됐다는 말도 곁들였다.
지휘자 김신일씨(49)는 “외환위기 이후 왜소해진 ‘아버지’들의 기를 살려주고 싶은 소박한 마음에 합창단을 만들었는데 점점 꿈이 커진다”며 “2005년엔 일본 도쿄 합창페스티벌에 참가하고 미주 순회공연도 가질 예정”이라고 귀띔했다.
김씨는 또 “노래를 좀 못해도 멋있게 들린다는 것이 남성합창단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문화에 굶주린 모든 아버지들이 합창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전국 곳곳에 합창단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가입 문의 011-792-9272(김신일 지휘자)
이재명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