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비화기
‘휴대전화 믿어도 되나요?’
요즘 휴대전화 가진 사람치고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휴대전화가 도청이나 감청이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날로그 휴대전화의 뒤를 이어 CDMA 휴대전화가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도청이나 감청은 불가능한 것처럼 여겨졌지만 그렇지 않다는 정황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CDMA 휴대전화 도청은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비용이나 노력이 많이 들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 이제까지 나온 결론. 하지만 가입자들로서는 CDMA 휴대전화도 도청이나 감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이 불안할 따름이다.
비화단말기
이처럼 휴대전화 도청 공포증이 확산되면서 휴대전화용 비화(秘話) 장치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비화기는 통화하는 양쪽의 휴대전화에 달아 통화 내용을 암호화함으로써 도청을 막는 장치. 한 금융회사는 얼마 전 보안 전문업체에 특별 주문해 세트당 200여만원을 호가하는 휴대전화용 비화기 10여대를 마련해 주요 임원들에게 지급했다.
최근에는 한 발 더 나아가 이러한 비화 기능을 갖춘 휴대전화기도 등장했다. 휴대전화 전문업체 팬택앤큐리텔이 음성 암호화 알고리즘을 내장해 도청을 원천적으로 막는 휴대전화기를 개발, 공개한 것. 완벽한 사생활 보장을 원하는 특수 고객층을 겨냥해 고안된 제품이다. 물론 도청방지 기능이 발휘되려면 거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동일한 비화 단말기를 가지고 비화통화 모드로 통화해야 한다. 회사측은 “어떤 방식의 도청 시도에도 안전한 제품”이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제품의 시판 시기는 아직 미정이다.
김태한기자 freewill@donga.com
도·감청에 대한 관심이 크게 높아지고 있다.
도청이 불가능하다던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국내 이동통신마저 유선망을 통한 도청 가능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부부처와 기업체들은 도청 탐지·방어 장비를 마련하느라 분주하다.
▽‘도청 꼼짝 마’=도청 전문탐지업체인 금성시큐리티는 최근 GS-디버그(debug)21이라는 장비를 판매하고 있다. 이 장비는 도청기가 발산하는 전파를 포착해 도청기의 위치를 알아낸다. 탐지 주파수 대역을 간격별로 나눠 다양한 영역대의 주파수를 쓰는 모든 도청기를 찾아낼 수 있다. 또 컴퓨터나 모니터에 연결하면 음성 도청뿐 아니라 몰래카메라를 이용한 도청까지 탐지해낸다. 가격은 2200만원. 출장 도청 탐지 서비스는 최하 20평을 기준으로 20만원이며 20평 이상이면 평당 6000원씩을 더 받는다.
보안업체 에스원은 도청방지를 전문으로 담당하는 특수사업팀을 운영 중이다. 해외의 유수 통신보안기관에서 교육을 받은 이들은 도청기를 찾아내는 수준에 그치지 않고 아예 건물 및 사무실의 설계 단계부터 도·감청을 차단하고 있다. 천장구조, 사무실의 모양이나 창문 위치, 보온시설 등에 대한 보안 컨설팅은 물론이고 이미 건축된 사무실의 경우 사무실 내 가구 위치, 회사 내 중역실이나 회의실 위치 등을 조정해준다.
보안업체 에스원의 도·감청 탐지 전담부서인 특수사업팀 직원들이 서울 시내 모 건물에서 사무실 안팎에 설치된 도청기를 찾고 있다.
수억원대의 도·감청 탐지기를 사용한 탐지 서비스는 평당 4만원에 도청확인 대상 전화기 1대에 5만원씩을 별도로 받는다. 판매가 700만∼800만원 정도인 에스원의 보급형 도청 탐지기 CRM-700은 적외선, 전파, 전류 등을 이용한 다양한 도청기를 찾아낼 수 있어 인기가 높다. 또 다른 업체인 스카이존은 한 사무실에서 다른 여러 사무실의 도청기 유무를 네트워크를 통해 24시간 확인할 수 있는 장비 ‘워치독(watchdog)’을 대당 150만원에 팔고 있다.
스카이존의 도청 탐지 서비스 비용은 평당 1만원.
▽도·감청 및 방지 기술은 곧 국력=통신보안업체들은 국내 도·감청 장비 및 기술수준이 아직 선진국에 비해 크게 미흡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업체들의 도·감청 탐지 장비들은 이미 인터넷에 등장한 순간 해당 장비를 능가하는 도청기들이 개발된다. 다만 이런 최첨단 도청기들은 워낙 고가이기 때문에 많이 쓰이지 않을 뿐이다. 한 도청 탐지업체 관계자는 “도청과 도청탐지는 모순(矛盾·창과 방패)의 관계이기 때문에 어느 쪽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도청탐지연구원의 남태경 원장은 “도·감청을 이용한 정보 수집력은 바로 국력이 된다”며 “정치 상황에 휩쓸려 도·감청과 그 방지 기술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것은 잘못”이라고 강조했다.
최호원기자 bestig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