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회사에 근무하는 30대 후반의 L씨가 병원에 찾아왔다.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우며 목이 따끔거리고 눈도 가려우며 코가 막혀서 영 집중이 안 되고 피곤하다고 호소했다. 방사선 검사와 알레르기 검사, 후두내시경 검사 등을 시행했으나 별다른 이상 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그는 2년 전 서울 강남 테헤란로의 새 빌딩으로 사무실을 이전한 이후부터 증상이 나타났으며 특히 겨울철에 괴롭다고 하소연했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지어진 건물들 중에는 에너지 대책의 일환으로 여러 가지 단열재를 사용하고 창문이 별로 없는 밀폐된 빌딩들이 많다. 이러한 빌딩들은 환기가 잘 되지 않아 실내공기가 오염될 우려가 매우 높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 지어진 빌딩들은 실내장식을 위해 여러 가지 합판과 접착제, 페인트 등을 사용하게 된다. 이런 건축자재에서 포름알데히드 등 갖가지 화학물질이 방출된다.
포름알데히드는 자극적인 냄새를 띠고 대기 중에 방출되는 독성물질로 합판, 발포 단열재, 스프레이식 페인트 등 건축자재와 가구에서 많이 나온다. 이런 포름알데히드는 목 코 눈 등에 강한 자극을 주어 알레르기 또는 감기와 비슷한 증상을 나타내고 피부발진, 두통, 피로, 메스꺼움 등의 증상을 가져 오기도 한다.
실내공기 중 높은 수치의 포름알데히드 농도에 장기간 노출되어서 상기도, 중추신경계, 면역계, 자율신경계, 내분비계를 중심으로 여러 가지 과민반응이 앞서 언급한 증상들로 나타나는 경우를 ‘식 빌딩증후군(Sick Building Syndrome)’이라고 한다. 과거 북유럽에서 실내 장식을 위해 스프레이 페인트를 칠한 후 포름알데히드가 실내공기 중에 방출되어 집단적으로 ‘식 빌딩증후군’ 환자가 발생했던 사례가 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빌딩관리법을 제정해 환기 대책을 세워 대비하고 있다. 후생노동성에서 실내공기 중 포름알데히드 농도의 기준치를 0.08ppm 이하로 규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서는 빌딩관리법 규제대상이 아닌 주거용 신축 가옥 실내공기 중에 높은 수치의 포름알데히드가 방출되어 이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속출해 큰 사회적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 빌딩이 아닌 주거용 건물에서 증상이 나타나는 경우 ‘식 하우스증후군(Sick House Syndrome)’이라고 한다.
‘식 빌딩증후군’은 오래된 건물보다는 신축 건물에서, 그리고 장기간 포름알데히드에 노출된 경우에 많이 발생한다. 새로 지은 아파트에서도 이러한 증후군이 흔히 나타나고 있는데 이런 경우 성인 남자보다는 주부와 어린아이들에게서 훨씬 더 많이 발생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일본 정부에서는 3년 전부터 후생성 건설성 통산성 농림수산성 노동성과 학계가 공동 연구반을 구성해 역학 조사와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우리 정부 당국에서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식 빌딩증후군’에 대한 가장 효율적인 대책은 환기를 자주 시켜 실내공기 중의 포름알데히드를 포함한 화학물질의 농도를 낮추는 것이다. 실내환기를 위해 30분, 1시간 정도의 긴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5∼10분으로도 충분하며 잦은 환기가 훨씬 도움이 된다.
이상덕 이비인후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