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변을 별도로 수거해 물사용량을 줄이면서 분리한 대소변을 퇴비로 재활용하도록 한 양변기. 연구책임자인 안톤 페터프뢰흘리히 박사가 원리를 설명하고 있다. -베를린=권재현기자
‘서서 오줌 누지 마세요!’
독일 베를린 남부에 위치한 베를린수자원경쟁력연구원(KWB) 3층의 홀 한 구석에 놓여 있는 양변기 위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그 문구 아래는 한 남자가 누워서 오줌을 누는 익살스러운 만화가 함께 그려져 있다.
이 변기는 KWB가 3년여의 연구와 조사 끝에 내놓은 대소변 분리 처리 특수변기다. 이 변기는 소변만 따로 흘러가도록 별도의 구멍과 통로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남자도 앉아서 오줌을 누어야 한다. 시트에 앉아 오줌을 누면 오줌은 통로로 흘러 나가고 이후 소변통로가 막히면서 청결을 위한 소량의 물만 흘러나오도록 설계됐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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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소변을 분리 처리하는 방식은 크게 ‘중력분리형’과 ‘진공분리형’으로 나뉜다. 중력분리형은 소변을 따로 받는 통로를 만듦으로써 대소변을 분리하는 방식. 진공분리형은 비행기의 화장실처럼 진공장치를 설치해 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대소변을 분리하는 방식이다.
분리처리 연구책임자인 안톤 페터프뢰흘리히 박사는 대소변을 분리해 처리할 경우 세 가지 이점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 물 사용량이 크게 준다. 중력분리형의 경우 소변만 처리한다면 50%가량의 절수 효과가 있다. 진공형을 사용할 경우는 대소변 모두 잔류물질만 씻어내기 때문에 90%가량의 물을 아낄 수 있다.
둘째, 대소변을 퇴비로 활용할 수 있다. 생활하수 중 질소(N)와 인(P) 성분은 대부분 대소변에 들어 있다. 질소는 소변에 87%, 대변에 10%가 함유돼 있고 인은 소변에 50%, 대변에 40%가 함유돼 있다. 특히 인은 전 세계적으로 비료소비가 늘어나면서 2060년경에는 부존량이 현재의 절반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각각 분리 처리한 대소변을 퇴비로 활용할 경우 상당한 경제적 수입을 기대할 수 있다.
셋째, 대소변이 하천으로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 수질과 환경을 보전한다. 특히 부영양화의 주범으로 꼽히는 인과 질소의 방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KWB에서는 설치비용과 함께 50년 후까지의 경제성까지 고려해 중력분리형을 먼저 실용화하는 작업을 진행중이다. 페터프뢰흘리히 박사는 “이 양변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남자도 앉아서 오줌을 누도록 용변 습관을 바꿔야 한다”며 “절수를 위해서는 수천년간 계속된 행동의 변화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첨단 과학과 아이디어를 활용한 절수기술은 화장실용수 말고도 욕실용수, 세탁용수, 설거지용수 등 ‘한 번 쓴 물’을 재활용하는 데까지 미치고 있다. 독일 폰토스사에서 지난해 시제품을 내놓은 ‘아쿠아사이클 900’이라는 중수정수기가 대표적이다.
양쪽에 문이 달린 냉장고보다 약간 큰 이 제품은 하루 2400L까지의 오염된 중수를 생물학적 방법으로 재처리해 화장실과 세탁용수, 정원용수 등으로 재활용할 수 있게 해 준다. 이를 위해서는 물론 중수도를 별도로 설치해야 한다. 소비자가격은 500만원대. 5가구(20명)가 사는 다세대 주택을 짓을 때 가구당 100만원을 부담하면 10년 안에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고 회사측은 설명한다.
이 제품 개발에 참여한 엔지니어 에르윈 놀데는 “중수정수기를 거친 물로 목욕까지 할 수 있다”면서 “궁극적으로는 식수용으로까지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
베를린=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獨기업 "물은 돈이다"▼
롤러와 물구멍을 통해 회로기판을 세척함으로써 물낭비를 줄이고 있다.-베를린=권재현기자
독일 베를린시 외곽에 위치한 전자업체 안두스. 직원 90명의 중소기업인 안두스는 연간 800만유로(약 100억원)의 전자회로판과 의료기구 등 첨단 컴퓨터부품을 생산한다. 독일의 대표적 기업인 지멘스와 의료업체 에어라겐 등이 주고객.
이곳은 지난 5년간 물 소비량을 하루 평균 50t에서 28t으로 절반가량 줄였다. 컴퓨터 제조업체들은 청정기업일 것이라는 이미지와는 달리 많은 물을 사용하고 오염시킨다. 구리가 많이 쓰이는 회로판을 세척하는 데 물을 쓰는 데다 용매로 크롬 등 중금속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미국의 실리콘밸리 등 첨단산업단지에서 사용하는 물 사용량은 전통적 중공업의 물 사용량을 능가하고 있다.
안두스도 마찬가지. 그러나 이 회사는 ‘환경 보호’와 ‘비용 감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시설과 작업경로를 철저히 물 절약 체제로 뜯어고쳤다.
우선 공장의 회로기판 세척기 20대를 모두 절수형으로 교체했다. 과거에는 회로판을 물에 담가서 세척한 뒤 물에서 꺼내 다음 공정으로 이동했다. 그러나 새로운 세척 공정은 구멍을 통해 물이 나오는 롤러를 사용해 회로판을 세척하고 솔로 구멍을 세척하는 방식이다.
또 전체용수 중 중금속으로 오염되는 3분의 2를 제외한 냉각수 등은 중수도를 통해 재활용한다. 공장 지하에 마련된 중수도시스템 마지막 단계에서는 방류 하수를 최소화하기 위해 자체 슬러지시스템을 갖췄다.
안두스의 책임엔지니어 하인즈 디터 크뢰거는 “독일은 공업용수와 가정생활용수의 가격이 같기 때문에 물 절약은 바로 수익성과 직결된다”면서 “물 절약을 통해 1년 동안 4만유로(약5200만원)의 지출감소 효과를 낳아 올해로 5년 전 투자비용을 모두 회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베를린=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독일인의 물 아끼기▼
“베를린시 물 공급의 문제는 시민들이 너무 물을 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지하수 수위가 높아져 저지대 주택들이 지하수에 잠기기도 합니다.”
독일 베를린 지역의 상하수도사업을 맡은 베를린수자원공사(BWB)의 베른트 하인즈만 연구개발실장의 말이다. 독일인들이 얼마나 물을 아껴 쓰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2000년 독일인 한 명이 하루 동안 사용하는 물 사용량은 129L로 조사됐다. 한국인이 사용하는 361L(2002년 환경부 상수도통계)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한국의 경우 97년에 무려 409L를 사용한 것과 비교할 때 많이 줄어든 것이다. 각종 절수용품의 보급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의 경우 공급되는 수돗물 중 누수 등을 제외한 유수량만을 따져도 282L로 독일보다 2배나 많이 쓴다. 독일은 1인당 사용 가능한 수자원이 1200t가량으로 한국과 마찬가지로 ‘물부족 국가’다.
독일인의 절수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가 화장실용수다. 화장실용수는 서구 선진국의 생활용수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양변기 물을 한번 내릴 때마다 18L씩 사용되는 변기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일은 대부분 12L의 절수형 제품이고, 9L의 초절수형도 많다. 그래서 독일 가정용수의 1위는 화장실용수가 아니라 욕실용수다. 그나마 1인당 욕실용수 사용량도 미국 화장실용수(101L)의 절반도 안 되는 46L에 불과하다.
독일의 물 소비량이 이처럼 적은 이유는 수돗물의 고가 공급정책과 이에 맞물린 각종 절수용 제품의 보급에 있다. 독일은 유럽에서도 수돗물 값이 가장 비싸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베를린 지역의 수돗물 값은 t당 2.5유로(약 3300원)다. 서울의 지난해 평균 수돗물값(t당 453원)에 비해 약 8배나 비싼 가격이다.
베를린=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