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의 월드컵축구대회는 흑자인가 적자인가.’
정부는 물론 ‘흑자대회’라고 할 것이다. 월드컵 수익금으로 1100억원짜리 대형 기념관까지 지으려고 할 정도이니 그럴 만도 하다. 4강신화에다 전국민적인 응원을 통해 얻은 화합과 단결까지 감안하면 적자라고 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월드컵대회의 모습은 아니다. 월드컵 경기장이 있는 시도마다 적자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다. 1조1800억원이나 들인 10개 월드컵 경기장이 ‘세금도둑’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허술한 지방 살림에 아까운 세금을 쏟아 붓고 있으니 그 고충은 짐작할 만하다. 월드컵대회에서 흑자가 났다면 기념관을 지을 게 아니라 적자로 고생하는 지방을 먼저 돕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햇볕정책은 흑자인가 적자인가.’
햇볕정책에 비슷한 질문을 한다면 어떤 대답이 나올까. 아마도 현정부는 ‘성공한 흑자정책’이라고 할 것이다. 햇볕정책 덕분에 평화를 얻고 노벨평화상까지 받아 나라의 명예를 높였다고 생각할 테니 당연히 그럴 것이다. 더구나 북한 개발사업을 독점하면 ‘꿩 먹고 알 먹는 일’이 아닌가. 비밀 송금액이 5억달러인지 10억달러인지는 모르지만 이런 성공의 대가라면 별게 아닌 듯도 싶다.
그러나 그게 전부가 아니라니 혼란스럽다. 성공한 월드컵의 뒷전에서 쓴맛을 보고 있는 지방의 경우처럼 ‘선의의 피해자’들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가 옛 현대전자였던 하이닉스반도체의 소액주주들이다. 그들은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현대전자가 현대건설에 1억달러를 빌려줬다가 사라지는 바람에 주가가 떨어져 피해를 보았다고 주장한다. 당시의 경영진을 상대로 형사고발하겠다고도 한다.
이들만이 아니다. 2억달러를 송금했다는 현대상선이나 현대건설의 소액주주들도 잠재적인 피해자들이다. 정부 지시대로 현대 계열사에 돈을 빌려줬다가 떼이게 된 부실은행, 그리고 그 은행의 주가가 떨어져 손해를 입은 주주들, 부실은행에 공적자금을 쏟아 붓느라 혈세를 더 부담하게 된 국민도 피해자들이다. 주주와 은행피해만 16조원이나 된다는 분석도 나온다.
거기다가 청와대 관계자의 말처럼 ‘진상을 까면 현대가 망하는’ 사정까지 감안하면 도대체 적자라도 이런 적자정책이 없다. 적자를 흑자로 둔갑시키는 ‘분식회계(粉飾會計)’ 수법과 다를 바 없다. 허점을 감춰주고 성과를 부풀리는 분식회계는 부실기업들이 단골로 쓰는 속임수다. 외환위기의 원인이 되었던 한보와 기아 그리고 그 이후에 도산한 대우그룹도 죄목은 분식회계였다. 김대중 정부는 이제 신뢰를 잃고 있다. 스스로 ‘분식회계’에 연루됐기 때문이다. 비밀송금하고도 장부에 적어놓지 않은 현대 계열사들을 봐주는 기준으로는 설득력이 없다.
분식회계는 결국 드러나게 되어 있다. 지방의 월드컵 경기장이나 현대의 소액주주들처럼 감췄던 그늘이 언젠가는 불거지기 때문이다. 아무리 ‘통치행위’라고 주장하더라도 ‘분식회계’는 불법일 뿐이다. 그동안 정부와 현대가 한 거짓말은 사과하고 용서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북비밀지원의 비밀과 분식회계는 그렇게 해결되기 어렵다. 이상한 ‘분식회계’의 유혹에서 벗어나는 예방책이 유일한 해법이다.
박영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