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전문화되는 현대 사회의 추세처럼 농구도 포지션별 분업화가 대세다. 하지만 언제나 예외는 있는 법. 최근 6연승으로 시즌 초의 돌풍 재연에 나선 코리아텐더 푸르미는 분업화에만 얽매이지 않는다. 공격과 수비에서 특정 선수에 크게 의존하지 않고 모든 선수들이 코트를 누비며 전력 이상의 힘을 발휘하는 것. 바로 ‘전 선수의 멀티플레이어화’다.
그 중심에 선 선수가 정락영(28·사진). 포인트가드로 리더 역할에 충실한 정락영의 최대 장점은 발이 빠르고 부지런하다는 것. 야전사령관이 쉴 새 없이 코트를 누비니 다른 선수들도 가만 있지 못한다. 코리아텐더 선수 중 코트에서 서 있는 선수를 거의 볼 수 없을 만큼 움직임이 기민한 것도 이 때문. 정락영의 바쁜 손놀림에 다른 선수들의 입에서 단내가 가시지 않지만 그것이 승리를 부르는 수신호라는 걸 알기에 누구도 불평하지 않는다.
정락영의 부지런한 플레이는 동료들에겐 득점 기회를 제공해주는 반면 상대 선수들에겐 체력을 빨리 소모시키는 이중의 효과를 거두며 코리아텐더 돌풍의 밑거름이 되고 있다.
지난해 12월1일 SK 나이츠전에서 종료 직전 어이없는 자책골로 승리를 헌납한 것도 성실한 플레이의 어쩔 수 없는 결과였고, 그러기에 누구도 정락영을 책망하지 않았다.
정락영의 플레이는 파이팅이 넘친다. 그리고 위기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팀 최다연승 기록인 6연승을 기록했던 9일 동양 오리온스전에서도 정락영은 선발로 나선 최민규 대신 2쿼터 중반 투입돼 종료 2분여를 남기고 84-81로 아슬아슬하게 리드하던 상황에서 천금같은 3점포와 자유투 두 개로 대세를 갈랐다.
한양대 출신으로 동양을 거쳐 코리아텐더에 정착하기까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다 올 시즌 최고의 활약을 펼치고 있는 정락영은 ‘상대를 어떻게 제압하는지를 알고 뛰는 선수’. 이상윤 감독은 그래서 “상대팀의 가장 까다로운 선수는 항상 정락영에게 맡겼고 실망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98∼99시즌 데뷔 이래 지난 시즌까지 경기당 평균 6.4점 3.7어시스트에 그쳤던 정락영은 올 시즌 들어 6.6점에 3.6리바운드 5.9어시스트(6위) 2.02가로채기(5위)로 맹활약중이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