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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일과 꿈]박진영/대중음악, 날 떠나지마

입력 | 2003-02-12 18:33:00


대학(연세대 지질학과 90학번) 2학년 때 우연히 대중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게 되면서 나는 거기에 흠뻑 빠져 들었다. ‘음악이 이렇게 만들어지는구나. 그래서 세상에 뿌려져 누군가의 친구가 되고, 눈물이 되고, 또 행복이 되는구나.’

그 뒤 2년간 나는 오로지 음악 공부에만 전념했고 대학 4학년 때 내 음반을 발표하게 됐다. 1994년 데뷔 앨범에서 ‘날 떠나지마’라는 곡으로 상상도 못했던 팬들의 사랑을 받으며 각종 가요 인기순위 프로그램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그 후 5년간 나는 발표하는 앨범마다 정상의 인기를 누렸지만 뭔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가수론 만족못해 제작자 나서▼

무대에 서고 공연을 하는 일이 굉장히 소비적이라 느껴졌고 좀 더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일에 전념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음악 프로듀싱 작업이었다. 나는 작사 작곡 기획만 하고 그것을 무대에서 소비하는 일은 가수에게 넘김으로써 순수 창작에만 몰두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god’, 진주, 박지윤 등을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러나 다른 음반사에 소속돼 일을 하다 보니 내 뜻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생겼고 결국 ‘JYP 엔터테인먼트’라는 음반기획사를 창업하게 되었다. 가수와 프로듀싱 작업 외에 경영 재무 홍보 무용 의상 뮤직비디오까지 신경을 써야 했고 하루 일과는 오전 8시에 시작해 새벽 3시가 돼서야 끝났다. 너무나 힘들었지만 이 시스템을 잘만 구축하면 나는 음악이라는 산(山)의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산 정상에는 내가 꿈꾸던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자유’였다. 재능 있는 신인을 캐스팅하는 일부터 시작해 그들을 교육하고 데뷔시키는 일, 홍보와 이미지 메이킹, 다른 산업과 결합해 새로운 수익모델을 만드는 일까지 모두 조직과 시스템에 의해 자동으로 돌아가도록 한 뒤 뮤지션 스스로 자신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는 자가진단 기능까지 갖추면 난 그토록 꿈꾸어 오던 자유를 얻게 되는 것이었다.

탄탄한 기반과 뛰어난 신인들을 이용해 내가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자유, 1주일에 하루는 쉴 수 있는 자유, 음악이 안 될 땐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자유, 신인을 뽑을 때 생김새를 따지지 않아도 되는 자유,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미국 시장에 도전해 세계 최강들과 겨뤄볼 수 있는 자유…. 나는 이러한 자유를 꿈꾸며 하루에 5시간 토막잠을 자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그리고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3년 연속 ‘최고의 프로듀서’로 선정됐고 새로운 음반 제작 시스템으로 신인가수 ‘비’ ‘별’을 모두 정상에 올려놓았다. 그토록 기다렸던 미국 진출을 위해 로스앤젤레스에 베이스캠프도 차렸다.

그러나 정상에 깃발을 꽂은 지 1년도 채 안돼 나는 미국 작업실을 모두 철수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소리바다’와 같은 MP3 파일 무료교환 인터넷 사이트들이 확산되면서 음반 판매량이 급속히 떨어졌고 모든 음반사들이 생사(生死)를 걱정해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20분이면 음반 한 장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데 누가 음반 가게에 가서 CD를 사겠는가.

▼무료 ‘다운로드’에 멀어지는 꿈▼

지난해 한국 가수 음반의 손익분기점인 15만장이 넘게 팔린 음반이 채 10장도 안 되고 1년이면 2, 3장 나오던 100만장 돌파 앨범은 아예 사라졌으며 50만장을 겨우 넘긴 앨범이 고작 2장뿐이었다. 이대로라면 올해 안에 몇 개의 음반회사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나마 팬클럽의 열성적 지원과 인터넷 콘텐츠나 행사 수입이 있는 아이돌 스타 중심의 몇몇 기획사만 버텨낼 수 있을 것이다.

현대자동차나 삼성전자의 핵심 기술을 누군가 파일로 변환시켜 전 세계 사람들이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는 인터넷 사이트가 생긴다면 한국 경제는 어떻게 될까.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음악이라는 산이 무너지고 있다. 그런데 이번엔 나 혼자의 힘으로 막기엔 역부족인 것 같다. 음악을 아끼는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박진영 가수·음악 프로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