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기술(IT)로 정보격차를 허물어라.’
인터넷의 대중화 속도가 빨라질수록 인터넷 사용자와 비 사용자 사이의 사회 문화적 단절, 이른바 ‘디지털 디바이드(정보격차)’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그동안 정부와 각 업체들은 정보격차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교육 제도와 서비스를 내놓았다. 정부는 ‘정보격차 해소 세부 시행계획’에 따라 올해에도 합동으로 낙도 주민, 노인, 장애인에 대한 PC보급과 교육을 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계몽운동 수준의 노력으로 정보격차를 좁히기에는 역부족이다. 아무리 PC를 집에 들여놓고 교육을 받아도 여전히 다가가기 힘든 게 컴퓨터다.
최근 기업들은 ‘어려운 것을 가르치려 들지 말고 쉽게 만들자’는, 색다른 접근법을 시도하고 있다. 역설적이지만, IT를 쉽게 접하기 위해 기업들은 IT를 활용하고 있으며 여기서 또 다른 사업기회를 만들어내고 있다.
▽입으로=건축회사 일성프렌트의 김상준 사장(44)은 그동안 PC로 하는 작업을 직원들에게 맡겨왔다. 컴퓨터와 인터넷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고, 옆에서 직원들이 하는 것을 보면 ‘나도 할 수 있다’는 욕심이 생겼지만 키보드에서의 자판 두들기기는 넘기 힘든 장벽이었다. 그러던 중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최근 음성인식 소프트웨어를 PC에 설치했다.
그는 요즘 초등학교 중학교에 다니는 자녀에게 매일 10여통씩 e메일을 보내고 인스턴트 메신저로 채팅을 한다. 웬만한 문서 작업은 스스로 처리, 직원들을 ‘타자수’ 역할로부터 해방시켜 줬다.
김 사장이 사용 중인 음성인식 소프트웨어 ‘바이 보이스’는 보이스텍이 지난 2년간 100억원의 연구개발비를 들여 만든 제품. 전체 인력의 60%가 석·박사 급 연구개발인력인 이 회사는 이 밖에 음성인식 기술을 응용한 증권정보 음성자동응답시스템(ARS)과 차량항법 장치 등을 내놓고 있다. 음성인식 기술은 그 자체로도 시장성을 인정받고 있다. 음성기술분야 시장조사기관인 미국 TMA에 따르면 올해 음성기술 관련 세계시장이 380억달러(약 45조원)에 이를 전망.
▽손으로=대전에 본사를 둔 힘스코리아는 1999년 말 창업과 동시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컴퓨터 조작장치 개발을 시작, 올해부터 제품들을 시장에 내놓고 있다. 최근 판매를 시작한 ‘브레일 한소네’는 컴퓨터 모니터에 뜬 내용을 그림과 글자로 나눈 뒤 글자만 모아 순서대로 배열한다. 그 다음 배열된 문자들을 음성으로 읽어주거나, 이를 점자로 역번역해 특수 자판의 돌출부를 통해 손으로 읽게 해 준다. 이 기기와 소프트웨어를 이용하면 시각장애인 뿐만 아니라 청각장애인도 인터넷 정보검색을 할 수 있다. 힘스코리아는 올 초 제품 개발과 동시에 정부의 지원을 받아 전국 13개 맹인학교에 600여대를 납품했다.
윤양택 사장은 “인터넷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에서도 장애인들이 현금인출기 키오스크 등 다양한 정보기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품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서비스, 아이디어, 사회사업으로=SK텔레콤은 1998년 1월부터 점자 청구서를 발송하고 있으며 2001년 1월부터는 점자 설명서도 발행하고 있다. 최근에는 단문메시지(SMS)를 월 500회 기본 제공하는 청각장애인용 ‘뷰 플러스’ 요금제를 내놓았다. 삼성SDS는 소년원생들의 ‘정보화 재활’을 위해 PC교육 봉사를 해 오고 있다. 또 한국마이크로소프트는 암사재활원 등 중증 장애아동 보호시설에 5년째 분기마다 지원금 1000만원과 컴퓨터를 제공하고 있다. 장애인용 컴퓨터 보조기기 전문업체 코지라이프는 손 대신 발로 조작하는 마우스를 개발했다.
정보 소외 계층용 제품을 만드는 업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정부의 지원이 더욱 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보통신부 정보화기획실의 정용환 정보화기반과장도 “정보사회로 진전속도가 워낙 빨라 정보격차는 곧 사회단절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장년층과 장애인들을 ‘끌어안기’ 위해 정부 부처별로 지원을 늘리고 있어 곧 성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나성엽기자 cp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