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고전을 탐독하는 사람들은 고전을 원문으로 음미하기 위해 한자공부로 옮겨가기도 한다. 사진은 전통문화연구회가 초급 수준의 한자강좌로 개설하고 있는 ‘명심보감’ 수업 모습.
‘…함께 누우면 언제나 나는 당신에게 말하곤 했지요. 여보, 다른 사람들도 우리처럼 서로 어여삐 여기고 사랑할까요. 남들도 정말 우리와 같을까요. …당신을 여의고는 아무리 해도 나는 살 수가 없어요. … 나를 데려가 주세요.’
앞서 간 남편의 무덤에 아내는 이런 편지를 묻었다. 때는 1586년 6월. 사림(士林)이 동서로 갈린 와중에 이율곡이 서거했고(1584년) 정여립이 난을 꾀하다 자결하고(1589년) 멀지않아 임진왜란(1592년)이 닥쳐올 터였지만 이 16세기 조선여인에게 ‘세상의 끝’은 붕당도 모반도 전쟁도 아닌 사랑하는 이의 부재였다.
신간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에 실려 21세기에 읽히게 된 여인의 편지. 지극히 사적인 이 고백은 정치경제사 중심의 역사책으로는 체감할 수 없었던 16세기의 또다른 내면을 드러낸다.
● 작은사건에서 장대한 역사를 읽다
11일 현재 서울 교보문고 인문부문 베스트셀러 10위권의 판세. 1위 일연의 ‘삼국유사’(을유문화사), 3위 오주석 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의 ‘한국의 미 특강’(솔), 6위 정옥자 서울대 규장각 관장의 ‘우리가 정말 알아야할 우리 선비’(현암사), 9위 정창권 고려대 강사의 ‘홀로 벼슬하며 그대를 생각하노라’(사계절). ‘삼국유사’를 제외하고는 각기 미술 역사 문학으로 연구분야를 달리하는 당대 한국학 연구자들의 노작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한편 한양대 정민 교수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시의 미학을 해설한, ‘정민 선생님이 들려주는 한시이야기’는 텔레비전 서평 프로그램인 ‘TV 책을 말하다’와 오락프로그램 ‘느낌표’에 잇따라 선정도서가 됐다. 한국의 고전은 이제 대중적인 선호도에서 ‘로마인이야기’나 ‘그리스로마신화’에 버금가는 자리에 있는 것이다.
무엇이 이런 한국고전 읽기 붐을 불러온 것일까.
‘홀로 벼슬하며…’를 기획한 사계절출판사 류형식 인문팀장은 “대중적 관심은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다. 변화의 실제적인 이유는 그런 관심을 다른 접근법, 대중적인 언어로 채워줄 수 있는 필자군이 등장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주로 30, 40대에 포진한 신진 필자들은 정치 경제사 중심의 큰 그림을 그리는데 목매지 않는다. 개인이 겪은 사소한 사건들을 통해 당대를 구체적으로 그려내는 데 힘을 기울인다. 형식에 있어서도 훈고학적 해석보다는 때로는 소설, 때로는 편지 형식을 빌리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이런 연구경향의 변화에는 사학자가 아닌 전문가들의 고전연구 참여도 한몫했다.
정약전이 유배지인 흑산도의 바다생물을 관찰해서 쓴 기록인 ‘자산어보(玆山魚譜)’를 다시 읽어낸 책 ‘현산어보를 찾아서’(청어람미디어)는 현직 생물교사 이태원씨가 쓴 것이다. 경관공학자인 동아대 강영조 교수는 겸재 정선, 하서 김인후의 시선을 빌려 서울 세검정, 담양 소쇄원의 풍경을 읽어내는 ‘풍경에 다가서기’(효형출판)를 내놓았다.
구체성을 좇아 미시사(微示史)를 복원한 작업은 때로 ‘정사(正史)’로 알아온 통념을 뒤집는다.
선조 때의 대표적 사림인 미암 유희춘이 1567년부터 11년간 쓴 개인일기 ‘미암일기’를 풀어낸 ‘홀로 벼슬하며…’는 조선 전기에만 해도 여성에게 당당한 자기발언권이 있었음을 드러냈다. 아내와 떨어져 벼슬살이하던 미암이 ‘4개월간 여색을 탐하지 않았으니 당신은 이런 남편에 감사해야 한다’는 취지의 편지를 보내자 아내인 송덕봉은 ‘당신 나이 60이 가까운데 금욕한다면 당신 건강 유지에 이로운 것이지 내게 은혜를 베푼 것이 아니다’라는 답신으로 일침을 놓는다. 더하여 미암이 귀양가고 없는 새 시어머니의 3년상을 홀로 치른 것을 상기시키며 ‘당신이 독숙(獨宿)한 것과 내가 한 일을 비기면 어느 것이 가볍고 무겁겠는가’라고 묻는다.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아이디가 thanks23이라는 한 독자는 ‘시집가면 죽어도 그 집 귀신이라며, 친정에는 발길도 못했던 그런 (조선시대의) 모습. 하지만 미암일기를 보면 우리가 알고 있던 그 모든 조선시대의 그림이 허물어진다’는 서평을 남겼다.
●‘ 지나간 미래’로서의 고전읽기
한국고전에 대한 독자들의 감수성에 적잖은 변화가 일어난 계기로는 96년 출간된 ‘한시미학산책’(솔)이 꼽힌다. 저자 정민 교수는 ‘한시(漢詩)’의 매체인 한자의 무게에 압도되지 않으면서도 옛사람들이 가졌던 미의식, 시인들이 살았던 시대풍경을 이해하도록 독자와 텍스트간의 의사소통을 도왔다. 2000년 5월부터 태학사에서 출간된 고전산문선도 주목할만한 기획이었다. 이 산문선에는 박제가 심노숭 정약용 유몽인 등이 남긴 짧은 글 중에서도 특히 당대를 잘 드러내는 사소한 풍경, 저자의 내면을 보여주는 것들이 건져 올려졌다. 예컨대 박무영 박사(한림대 강사)가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의 시문집에서 골라낸 소품들로 엮은 ‘뜬 세상의 아름다움’에서 정약용은 ‘목민심서’에서보다 한층 체취를 가진 인간으로 다가온다. ‘가난(貧)’이란 시에서 다산은 이렇게 말한다.
“안빈낙도하리라 말을 했건만, 막상 가난하니 안빈(安貧)이 안 되네. 아내의 한숨 소리에 체통이 꺾이고 굶주린 자식들에겐 엄한 교육 못하겠네.” 부끄러운 아버지로서의 고백도 있다. 유난히 다산을 따르던 셋째아들이 천연두에 걸려 죽어갈 때 소식을 모르고 집을 떠나있던 다산은 진주 촉석루 아래 남강에서 기생들과 춤추고 노래하며 뱃놀이를 하고 있었다. ‘내 뜻이 황폐하니 재앙을 받는 것이 당연하지’라며 가슴을 쳤던 서른살의 아버지는 훗날 가슴에 묻은 자식을 그리며 천연두에 관한 연구서인 ‘마과회통(麻科會通)’을 지었다.
태학사의 산문선을 기획, 편역한 안대회 교수(영남대) 등은 1920년대 중국에서 펼쳐졌던 소품문학(小品文學)운동을 반추했다. 전쟁, 국공합작으로 어지러웠던 시대에 임어당 주자청 등은 명청(明淸)시대 지식인들이 남긴 소품산문을 읽으며 ‘생활의 발견’을 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던 것.
그러나 최근 고전을 펴내는 젊은 연구자들이 모두 ‘세상은 변해도 삶의 본질은 변치 않는다’는 문제의식에 잇닿아 있는 것은 아니다. 내달초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재해석해서 ‘열하일기, 범람하는 유머 열정의 패러독스’(그린비)를 펴내는 고미숙 박사(수유연구실+연구공간너머)는 “고전읽기란 ‘지나간 미래’를 만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그는 포스트모더니즘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메이지(明治), 도쿠가와(德川) 막부시대의 글들을 읽고서야 비로소 포스트모던에 대해 발언할 수 있게 된 것을 예로 들었다.
“한국고전을 읽으며 ‘민족’ ‘근대’라는 코드에서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다. 연암 박지원만 해도 조선이라는 국경선을 넘어서는 거대 비전을 갖고 있었다. 지금 우리는 전통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포스트모던시대 일상의 문제의식에 답을 줄 수 있는 하나의 대안으로서 이질적인 시간에 쓰여진 텍스트를 읽는 것이다.”
● 고전의 몸, 한자를 배우는 곳
‘삶이 다하기 전에 고전을 한번 읽어보고 싶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인지 길안내를 부탁합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다음의 고전 강독 동호회 ‘고전읽기’(cafe.daum.net/urisoop)에 게시된 글이다. 한국 고전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논어’ ‘맹자’ ‘대학’ 등 동양 고전을 읽으려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러려면 한문공부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연암이 어렵게 살다 요절한 누이의 묘비명을 지으며 처음 향년(享年) 몇세라 했던 것을 후에 득년(得年)이라 고친 이유는 한자의 뉘앙스를 알지 않고는 가늠하기 어렵다. 고생만 하다 간 누이가 산 세월을 어찌 ‘누렸다(享)’고 할 것인가. ‘얻었다(得)’라는 말을 고른 그 ‘단 한 자의 차이’는 글의 맥락을 바꾸는 중대한 차이지만 한자를 모르고서야 연암의 마음을 따라잡기 어렵다.
초보자가 들을 수 있는 한문강좌로는 서울 낙원동 전통문화연구회(02-762-8401)의 것이 손꼽힌다. ‘사자소학(四字小學)’ ‘명심보감(明心寶鑑)’ ‘교육한자 특강’을 무료로 진행한다(입회비 2만원 별도). 이 연구회가 운영하는 사이버서당(cybersodang.co.kr)은 유료로 각종 경서(經書)와 한시강의 등을 개설해놓고 있다. 남산골 한옥마을(02-2266-6937)도 매주 일, 월요일 한문강독 및 한시감상 강의를 한다. 3월부터는 매월 1만원의 수강료를 받을 계획.
한자실력을 일정 정도 갖춘 사람이라면 서울 명동 한복판에 있는 한서대 동양고전연구소 온지(溫知)서당(02-753-3399)을 찾아볼 만하다. 한학자 조남권 소장이 ‘대학(大學)’ ‘화론(畵論)’ 등을 강독한다.
정은령기자 ry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