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뉴욕 리포트]알몸 시위 여성들 “전쟁 막는다면…”

입력 | 2003-02-13 20:23:00


미국 정부는 7일 오전 ‘코드 오렌지’(테러 공격 위험이 높다는 의미의 경계령)를 발동했다. 맨해튼 거리에는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경찰들이 보였다. 뉴욕시는 공항 터널 다리 및 주요 건물에 대한 경비를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거리의 시민들은 강화된 테러 경계령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듯하다.

눈발이 흩날리던 이날 아침 뉴욕의 센트럴 파크. 하얀 옷으로 갈아입은 앙상한 나무들 사이로 물을 내뿜지 않는 베데스다 분수가 한가로운 광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 때 30여명의 여성이 분수 주위로 모여들었다. 이들은 삽시간에 옷을 훌떡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잔디밭에 누워 몸으로 글자를 썼다. ‘부시 반대(No Bush).’

공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경찰을 불러왔을 때 학생 기업인 운동가 등 다양한 직종의 여성들로 구성된 시위대는 이미 옷을 다 입고 있었다. 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회운동에 열심인 가정주부 엘리자베스 로리스 리터(40)는 “처음 해보았는데 믿을 수 없을 만큼 멋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면서 “비난받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리는 제대로 소리를 냈다”고 자평했다.

이번 시위를 기획한 웬디 트레메인은 “미국과 유럽, 남아프리카에서 비슷한 시위를 했다”면서 “관심을 쏟으면 뭔가 다르게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하는데 시위의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맨몸 시위에 참여했던 케이트 하임(25)은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너무 많은 미국인들이 이라크와의 전쟁은 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좌절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인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 문제에 무관심하고 또 많은 사람들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전쟁 이야기가 현실이 아닌 것으로 생각한다”며 답답해 했다.

일상적으로 미국인들은 전쟁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 전쟁 결과에 대한 우려감도 높지만 일반 미국인들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지지도는 최근 높아지는 추세다. 시사주간지 뉴스위크의 6일 여론조사에서는 60%가 전쟁을 지지했다. 또 6,7일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의 전화 여론조사에선 62%가 지지했고 반대는 37%였다. CNN방송은 9일 타임과의 공동조사에서 전쟁이 불가피하다는 응답이 75%로 뛰어올랐다고 보도했다. 그럼에도 반전 운동가들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사람들만이 할 수 있습니다.”

반전 운동가들은 여럿이 힘을 합해야만 전쟁을 멈출 수 있다고 외치고 있다. 전쟁을 피하는 것은 인간이고 전쟁을 하려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는 비꼼의 언어이기도 하다.

토요일인 15일 정오 뉴욕에서는 대규모 반전시위가 열린다. ‘세계가 전쟁에 반대한다(The World Says No to War)’는 슬로건을 내건 이번 시위에는 뉴욕을 포함해 세계 30여 대도시에서 연인원 수백만명이 참석할 예정. 뉴욕 시위는 유엔본부가 바라보이는 49번가와 퍼스트 애비뉴가 만나는 네거리에서 펼쳐져 5만명 이상, 많게는 30만명이 넘게 참여할 것으로 뉴욕시는 추산하고 있다.

오스카상 수상작인 영화 ‘양들의 침묵’(1991년)의 조너선 드미 감독과 ‘로잔나 포에버’(1997년)의 여배우 메르세데스 루엘도 이번 반전시위에 참여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마틴 루터 킹 3세, 팝가수 해리 벨라폰테, 배우 모스 데프와 대니 글로버 등은 연설을 할 예정.

뉴욕행사를 준비중인 활동가 레슬리 캐건 뉴욕 평화정의연합(www.unitedforpeace.org) 공동의장(56·여)은 “우리 모두가 나서면 전쟁이 터지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을 졸업한 1968년부터 30년 넘게 활동가로 현장을 누빈 캐건씨는 베트남전쟁에서 인종차별주의까지, 핵무기 폐지부터 동성애자 권리문제까지 두루 참여해온 베테랑.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조직 능력은 그동안 크고 작은 수많은 시위와 시민불복종 운동으로 구체화돼 왔다.

인터넷 반전활동도 활발하다. 무브온(www.moveon.org/nowar)의 반전사이트는 인터넷을 통해 지역구 의원들에게 ‘이라크가 미국에 확실하고도 현존하는 위험이 된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다면 이라크 전쟁에 반대해 달라’는 메일을 보내도록 도와주고 있다. 인터넷에서 이름과 주소, 추가로 하고 싶은 말을 적고 클릭만 하면 의원들에게 주민의 의사가 반영돼 전달되도록 하는 것이다.

또 다른 반전단체인 ‘보트노워(www.votenowar.org)’는 “우리의 반전 의지를 드러내려면 수백만명의 서명이 필요하다”고 시민들의 서명작업을 추진 중이다.

‘전쟁종식 네트워크’라는 단체(www.endthewar.org)는 쿠웨이트에 사는 노란이라는 이라크 소녀의 e메일을 소개하고 있다. “우리도 사담 (후세인) 정권에 반대해요. 그러나 사담에 접근하기 위해서 수천명의 죄없는 이라크인을 죽게 하는 미국의 방식으로 하자는 것은 아니에요.…이라크는 아름다운 나라랍니다. 훗날 놀러 오세요.”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