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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무연의 젊게 삽시다]죽기 위해 먹습니까?

입력 | 2003-02-13 20:23:00


장수국 일본에서도 대표적인 장수촌으로 꼽히던 ‘유즈리하라’라는 마을이 있었다. 굳이 과거형을 쓰는 것은 이제 이곳은 장수촌이 아니라는 얘기다. 70세 이상 노인이 마을 전체 인구의 8%이고, 90대 촌로가 농사를 짓던 이 시골마을에서 언제부터인지 50, 60대에 죽는 사람이 하나둘씩 늘어나더라는 것이다. 이유는 개발로 인한 생활수준의 향상이었다. 평소 잡곡과 채소, 산나물로 가득하던 식탁이 고단백, 고지방에 점령당하면서 성인병이 급증한 것이다.

미국의 세일즈맨이었던 레이 크록이 딕과 맥 맥도널드 형제와 함께 일리노이스데플렌즈에 ‘맥도널드’ 체인 1호를 개장한 것이 1955년. 이들은 불과 50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전 세계 121개국에 2만9000여개 매장을 세워 세계인의 입맛을 지배하고 있다. 햄버거는 미국 음식문화를 주도하는 패스트푸드의 상징이다. 빠르고 간편한 조리로 우리의 식탁에서 전통음식을 몰아냈다.

이 패스트푸드가 요즘 된서리를 맞고 있다. 비만과 성인병의 ‘주범’으로 몰리면서 소송이 걸리고 매출액이 급감해 창사 이후 첫 손실을 기록했다. 50여년 수모를 당하며 밀려났던 전통음식들이 ‘식탁의 반란’을 시도하고 있다.

전통음식은 상대적으로 슬로푸드다. 채소를 다듬기 위해 손이 많이 가는데다 다양한 발효식품은 식탁에 오르기까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현대 영양학의 막강한 지원을 얻고 있다. 이들 덕분에 삶의 질을 유지하며 건강하게 장수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다시 슬로푸드로 회귀한다.

패스트푸드가 밀리는 이유가 무엇일까.

첫째는 포식을 유도한다. 우리 몸은 식사를 하기 시작해 10여분이 지나면 배고픔이 사라진다. 예컨대 코스 요리의 경우 주 요리가 나왔을 때는 이미 더 이상 배가 고프지 않다. 이는 혈액 내로 들어간 포도당이 식욕억제중추를 자극해 식욕을 통제하기 때문이다. 뚱뚱한사람에게 천천히 식사를 하라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패스트푸드는 빨리 먹을 수밖에 없다. 식욕억제중추가 작동하기 전 이미 과식은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둘째는 지방의 함량이다. 햄버거 한 개에 감자튀김, 여기에 치킨 한쪽을 더하면 800 ㎉를 훌쩍 넘는다. 이중 50∼60%가 지방이다. 이는 하루 소비할 지방의 총량과 맞먹는다. 지난 한 세기 동안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에서 지방의 비율은 20%에서 35%로 거의 두 배나 늘었다.

셋째는 고염식이다. 우리가 세끼를 패스트푸드로 때운다면 아마 하루 소금 섭취권장량 500mg의 10∼15배까지 먹을 것이다. 고염식은 고혈압, 심장질환, 신장질환의 원인이 된다.

가장 중요한 마지막 이유가 있다. 일본말 가라오케에서 ‘가라’는 비었다(空)는 뜻이다. 오케스트라가 없는 노래방이다. 마찬가지로 패스트푸드를 ‘가라 푸드’라고도 한다. 무슨 뜻일까. 칼로리만 높지 인체가 필요로 하는 필수 비타민과 미네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마그네슘 철 칼슘과 같은 미네랄은 인체조직을 구성하는 세포를 만드는데 촉매역할을 한다. 또 비타민은 음식에서 얻어진 아미노산을 에너지로 바꿔주거나 신체조직으로 변환시키는 효소로 작용한다. 이들 미량원소가 부족하면 각종 질병은 물론 노화도 빨리 진행되는 것이다.

이런 반격에도 현대 외식산업을 주도한 패스트푸드의 수성은 견고하다. 우선 현대인에게 지방은 너무 유혹적이다. 초콜릿 삼겹살 꽃등심을 찾는 사람이 많다는 것은 지방이 혀를 녹이기 때문이다. 외식업자들은 소비를 촉진하기 위해 식품에서 지방함유량을 교묘하게 늘려간다.

최근 미국 워싱턴의대 연구팀은 지방과 칼로리가 높은 패스트푸드가 담배나 마약처럼 중독성이 있다고 영국 과학주간지 뉴사이언티스트에 발표했다. 패스트푸드의 당과 지방이 체내 호르몬 변화를 일으켜 개인의 자제력만으로는 먹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식품 생산업자들은 또 대량생산으로 가격을 파괴하고, 먹기 편한 용구와 장기보관이 가능한 제품을 개발한다. 유통기간이 길어진다는 것은 나트륨 함유량이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저온살균이나 캔과 같은 용기 사용은 밀폐된 용기 속에 있는 식품의 비타민과 일부 미네랄의 파괴를 뜻한다.

‘당신은 죽기 위해 먹습니까?’ 역설적인 표현 같지만 열량만 높고 각종 영양소가 부족한 식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냉장고에서 인스턴트 식품을 줄이고 주부가 손수 만드는 슬로푸드로 식탁의 반란을 꾀해야 할 때가 왔다. 유즈리하라 장수촌의 몰락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다.

이무연 제롬 크로노스 원장·의사 mylee@GeromeKrono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