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자연과 삶]최성각/“새만금 짱뚱어의 얘기 들리세요?”

입력 | 2003-02-14 18:44:00


도시에도 ‘자연’은 있다

어쩔 수 없이 환경운동하는 사람으로 불리고 있지만, 나는 지금 꼼짝없이 도시에 갇혀 있다. 거기다 담배도 피우고, 자동차 운전까지 한다.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스럽다. 더욱이 지난 4년간 공들여 가꾸어 오던 ‘풀꽃세상’이라는 환경단체가 내건 기치도 ‘자연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하자’였다. “본래 우리가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들이 아니었잖는가, 파괴할 능력이 있었다면 회복할 능력도 있지 않겠는가.” 그런 질문의 형식으로 일했다. 생각해 보니, 내가 환경운동판에서 일하게 된 데에는 시골에서 자란 탓도 은연중에 작용한 것 같다.

▼방게 새떼 가득했던 옛날 고향▼

대관령 너머 바다가 펼쳐져 있는 고향은 60년대 초반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완벽한 생태계를 유지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개나리 진달래가 지고 난 뒤에도 눈이 덮여 있던 대관령, 뒷도랑에 지천으로 살았던 미꾸라지와 방게, 소금쟁이. 큰비가 오기 전에는 마당으로 두꺼비가 엉금엉금 기어다녔고, 골목길에는 털복숭이 땅강아지가 부지런히 땅을 후볐다. 겨울철에는 남대천 양미리 덕장에서 고기를 슬쩍해 골목의 판자담을 연료로 화톳불에 구워먹었고, 깨진 얼음을 타고 월대산 언저리를 지나 바다 어귀에까지 이르곤 했다. 뒷산에서는 뱀이나 다람쥐, 부엉이를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새떼가 가득했던 하늘은 맑았고, 줄지어 등하교하는 여학생들의 교복은 눈부시도록 희었다. 바닷가 솔밭 너머 백사장에는 해당화도 지천이었다. 사람들은 막 전쟁이 끝난 뒤의 가난에도 불구하고 순후(淳厚)했고, 서로 인정이 넘치는 얼굴로 살았던 것 같다. 모두들 비슷하게 살아서인지 경쟁심도 덜했던 것만 같다. 전쟁도 앗아가지 못한 사람 사이의 정이 따스하게 살아 넘치던 때였다. 자연과의 관계도 지금처럼 적대적이지 않았다. 그즈음 내 고향뿐 아니라 이 나라 어딘들 생태적으로 온전하지 않았겠는가만 특히 동해안의 고향은 아름다웠다고 기억된다.

하지만 엄혹한 반공교육 속에서 ‘국민학교’ 입학 때부터 대학 졸업 때까지를 ‘한 사람’의 통치기간 아래에서 마칠 즈음, 나는 맹렬하게 자연을 파괴하는 개발이 진행됨을 알 수 있었다. 그 지도자는 굴뚝에서 시꺼먼 연기가 나오면 감격해 울었다고 한다. 고향을 떠난 20대 이후에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나는 곧잘 고향 바닷가에 내려가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 힘든 바다를 망연히 바라다보곤 했다. 심지어 독감도 바다 앞에 서 있다가 돌아오면 낫곤 했다. 그래서 나는 자연의 치유력을 믿는다.

그렇지만 도시의 아파트에 살면서 자연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불성설인가. 그래서 손발에 흙 한번 안 묻히고 배기가스나 담배연기를 대기오염에 보태면서 ‘자연’을 이야기하는 모순된 감정과 자괴감이 늘 내게는 있다. 그 괴로운 심사에도 불구하고 자연은 정말 그렇게 먼 곳에 있는가 묻게 된다. 어쩌면 자연은 공간적으로 시골에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 내부와 식탁에도, 슈퍼마켓에도, 지하철에서 만난 이웃의 얼굴에서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말리기 힘든 물신(物神)의 유혹과 공장에서 대량생산되는 독성이 그득한 먹을거리, 번쩍이는 쇼핑센터 진열대와 묻거나 태워도 곤란한 그 상품들의 포장지에서 석유화학문명의 한계와 불길한 미래를 생각할 수도 있다.

▼도시 식탁에도 ‘자연’은 있건만▼

말을 건네면 폭발할 것 같은 이웃의 얼굴에서도 ‘일그러진 자연’을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이 거대하고 정교한 생물권 클럽의 한 회원으로 무임승차한 뒤 그 연결고리가 매우 연약하다는 것을 묵살한 채 얼마나 난폭하게 살고 있는가 하는 반성 속에도 자연은 살아 펄떡이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정말 ‘보너스-전세금-자동차-로또복권 대박의 꿈’으로만 형성되어 있을까. 우리는 ‘흙-곡물-과일-미생물-나무-산소-초식동물-물고기-갯벌’에 이어져 있는 게 아닐까. 그런 당연한 자각과 함께 서 있는 곳에서 가능한 작은 실천도 ‘자연의 일’이 아닐까 싶다.

얼마 전, 이 엄동에 새만금갯벌을 살리기 위해 리어카에 나무로 짱뚱어 한 마리를 깎아세우고 서울까지 250여㎞를 뚜벅뚜벅 걸어온 전북 부안사람들이 서울에 도착해서 물었다. “짱뚱어가 하고 있는 말이 들리세요?”라고. 갯벌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이제 자연의 소리에 겸손하게 답변해야 할 때다. 살려야 할 갯벌이 우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최성각

1955년 강릉생. 198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환경운동하는 글쟁이’로 1999년 환경단체 ‘풀꽃세상’을 창립해 일해오다가 최근 ‘풀꽃평화연구소’로 옮겼다. 제2회 교보환경문화상을 받기도 했다.

최성각 작가·풀꽃 평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