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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직 세계]한국자산관리사 우리은행 이현숙 부지점장

입력 | 2003-02-16 18:39:00

금융가에 여성파워가 드세다. 우리은행 이현숙(李賢淑) 부지점장 겸 PB팀장은 한국자산관리사와 미국자산관리사 자격증을 무기로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프라이빗뱅킹 시장전쟁을 진두 지휘하고 있다. 권주훈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우리은행 개포동지점. 주변에는 도곡동 타워팰리스, 대림 아크로빌 등 부유층이 몰려 산다. 이곳은 은행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프라이빗뱅킹(PB) 시장의 최대 격전지.

14일 오전 8시반 지점에 출근한 이현숙(李賢淑) 부지점장 겸 PB팀장은 곧바로 회의에 들어갔다. 모두 4명인 PB팀원 가운데 2명은 여성. 우리은행의 미래를 책임진 사람들이다.

“타워팰리스 고객 A님의 생일이 다음달이지. 반드시 축전 보내도록 해요. 그리고 요즘 부동산 관련 문의가 부쩍 늘었어요. 부동산 관련 전문지식을 더 쌓아야 할 것 같아요.”

78년 서울여상 3학년 때 상업은행에 입행한 이 부지점장은 행내에서 자격증 왕으로 통한다. 투자상담사 1, 2종, 증권업협회 자산관리사(FP), 손해보험설계사, 한국자산관리사(AFPK), 미국자산관리사(CFP) 등을 취득했다. 지금은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 중이다. 그러면서도 은행에 다니면서 동국대 영문과를 마쳤다.

“우연히 병원에 갔다가 여러 종류의 전문자격증과 상장이 걸린 것을 보고 더 믿음이 가더라고요. 의사가 더 정확히 처방전을 내리는 것 같았습니다. 은행원과 고객의 관계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훌륭한 결과를 내기 위해선 고객과 은행원의 신뢰가 중요한데 아무래도 자격증이 큰 도움이 되지요. 물론 업무능력도 더 향상되고요.”

2000년 우리은행에 세일즈 프로페셔널 고객전문가 제도가 도입되자 이 팀장은 이 분야야말로 여성 은행원을 위한 길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막상 자격증을 준비하면서 겪은 고생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자녀들은 아직 어머니의 뒷바라지를 필요로 하는 나이였다. 고등학생 딸과 초등학생 아들에게 못할 짓을 한다는 죄책감마저 들었다. 하지만 남편 허경씨(47·남강고 교사)와 자녀들은 오히려 적극적으로 밀어줬다.

남편은 공부하는 아내를 격려하면서 청소 빨래 설거지 등 가사일의 60%를 분담해줬다. 아이들도 이 팀장이 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귀가하면 식탁에 둘러앉아 같이 공부하면서 고충을 함께 나눴다.

“퇴근 후 학원에서 공부하고 집에 가면 보통 밤 11시예요. 아이들 숙제 봐주고 씻고 반찬 몇 가지 만들면 어느덧 새벽 2시인 경우도 많았어요. TV를 못 켜게 하니까 아이들 불만이 대단했습니다. 하지만 오히려 TV 대신 책 읽는 습관을 들이더군요.”

한국자산관리사에 이어 미국자산관리사를 취득한 이 팀장은 자격증 취득의 장점으로 자신감 향상을 들었다.

검증된 파이낸셜플래닝 기법을 활용하다보니 고객의 자산관리에 좀 더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고객들은 항상 새로운 분야를 원했다. 금융종합과세는 기본이고 상속과 증여, 외화투자, 부동산 관련까지 물어왔다.

다른 은행과 거래하던 고객을 외환관련 전문지식으로 설득해 우리은행 고객으로 바꿔놓기도 했다. 외화정기예금 170만달러, 환전송금 월 10만달러 이상의 고객을 확보했다.

하지만 그는 자격증 취득에 안주하지는 않는다.

“자격증이 전문가임을 보증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자격증을 걸어 놓으면 더더욱 자신을 채찍질하게 되더군요. 고객들이 자격증을 보고서 나를 믿고 의지하는데 더 잘해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는 것이지요.”

요즘 대졸 신입행원 중 여성이 차지하는 비율은 30%에 이른다. 조만간 은행에서는 여성파워가 남성을 압도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이 팀장은 신입 여성행원에 대한 충고를 잊지 않았다.

“이제는 남자와 여자가 아니라 프로로서 경쟁하는 시대입니다. 솔직히 여자가 불리한 점도 많아요. 화장도 해야 하고 체력도 약하지요. 하지만 장기전에서는 여성이 유리하다고 생각해요. 여성은 목표를 세우면 끈기있게 추진하거든요. 특히 AFPK같은 자격증 취득에는 여성 특유의 끈기가 절대 필요합니다.”

그는 요즘 저녁 7시부터 11시까지 학원에서 공인중개사 공부를 한다.

“당장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따겠다는 것보다는 출근해서 만나게 될 고객에게 보다 정확한 부동산 상담을 해드리고 싶다는 욕심 때문이지요. 아이들이 개학하면 학원 다니기는 어려울 것 같고 틈나는 시간을 활용해 공부할 생각입니다.”

임규진기자 mhjh22@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