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한국영화를 이끌고 있는 프로페셔널들이 뽑은 ‘최고의 영화 제작자’에 싸이더스 영화사의 차승재 대표가 선정됐다. ‘최고의 감독’에는 이창동 감독, ‘최고의 남자 배우’에는 설경구, ‘최고의 여자 배우’에는 전도연이 각각 뽑혔다.
동아일보 문화부는 10일 영화감독들과 기획, 제작, 투자자, 마케팅과 배급 담당자, 평론가 등 99명에게 한국영화 각 분야의 ‘최고’를 선정해달라는 설문을 보내 모두 70명으로부터 응답을 얻었다. 설문은 모두 19개의 문항으로, 각 질문마다 순위와 관계없이 3명씩을 추천해달라고 의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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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을 분석한 결과 ‘최고의 제작자’ 부문에서는 ‘8월의 크리스마스’ ‘무사’등을 제작한 영화사 싸이더스의 차승재 대표가 가장 많은 추천(43명)을 받았다. 그는 ‘한국영화 수준 향상에 공헌한 제작자’와 ‘인재발굴에 가장 힘쓰는 제작자’ 부문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그 다음으로는 시네마서비스에서 한국영화 제작을 총괄해온 강우석 감독, 명필름의 심재명 대표가 똑같이 40명씩 추천을 받아 공동 2위가 됐다.
심대표는 ‘기획력이 가장 뛰어난 제작자’ ‘마케팅 감각이 가장 뛰어난 제작자’ ‘제작일정 관리, 비용 계산이 가장 철저한 제작자’를 묻는 설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또 강감독은 ‘최고의 투자자’부문에서 1위(46명)에 올랐다.
‘최고의 감독’은 이창동 감독(42명)이며, 응답자들은 그의 대표작으로 ‘오아시스’(22명)를 꼽았다. 이감독은 ‘작품성이 가장 뛰어난 감독’부문에서도 1위(52명)였다. 2위는 임권택 감독(39명).
‘흥행 감각이 가장 뛰어난 감독’ 부문에서는 최근 한국영화의 코미디 붐을 반영하듯 김상진(‘주유소 습격사건’ ‘광복절특사’), 윤제균 감독(‘두사부일체’ ‘색즉시공’)이 똑같이 41명의 지지를 얻어 공동 1위가 됐다.
‘영상 감각이 가장 뛰어난 감독’부문에서는 김성수 감독(30명)이 1위였고, 그의 최고작에는 ‘비트’(13명)가 꼽혔다. ‘최고의 촬영감독’은 ‘태양은 없다’ ‘봄날은 간다’등을 촬영한 김형구 촬영기사(39명).
‘최고의 배우’ 부문에서는 설경구(56명) 전도연(45명)이 단연 1위였다. 활동을 중단한 심은하가 ‘최고의 여배우’ 3위(28명)에 오른 것도 눈에 띈다.
한편 응답자 가운데 12명이 “최고의 여배우, 연기력이 뛰어난 여배우는 없다”며 2개 항목에 응답하지 않아 한국 영화계의 여배우 기근을 보여줬다.
‘주목할만한 신인배우’에 선정된 조승우(39명)와 손예진(33명)은 둘 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를 통해 데뷔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초짜-망한 감독들과 영화 만들죠" 최고제작자 차승재 ▼
“프로페셔널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게 큰 영광이죠. ‘좋은 영화’로 이제 돈도 벌고 싶은 것이 올해 소망입니다.”
‘비트’ ‘8월의 크리스마스’ ‘유령’ ‘무사’ ‘화산고’등의 영화를 제작해온 차승재 싸이더스 대표(43·사진)는 영화계에서 “장르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온 독창적인 프로듀서”로 손꼽히는 제작자다.
그는 ‘최고의 제작자’뿐 아니라 ‘한국영화 수준 향상에 공헌’하고 ‘인재발굴에 가장 힘써온’ 제작자 1위로도 꼽혔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는 “개인의 삶에 파문을 던지는 영화”다. 제작자로서 그가 꼽는 자신의 대표작은 ‘8월의 크리스마스’.
인재 발굴과 관련한 그의 원칙은 “다른 영화사에서 히트한 감독을 데려와 영화를 만들지 않는다”는 것. “늘 ‘초짜’들이나 다른 영화사에서 망한 감독들”과 영화를 만들어왔다. 김성수 허진호 임상수 봉준호 감독 등이 그렇게 차대표의 지원을 받아 현재의 감독들이 됐다.
“최근에는 관객들의 성향이 많이 변했다는 점을 느낍니다. ‘개그 콘서트’를 보듯 영화를 대하기 때문에 꾸준하게 드라마를 좇아가며 느끼는 재미보다 에피소드 단위의 말초적 재미를 즐기는 거죠”
그에게 불리한 상황이긴 하지만, 별로 걱정하지 않는다고.
“이야기라는 게 인간의 역사와 맞먹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좀 더 잘 짜여진 이야기로 승부하고, 변해가는 관객의 취향에 맞게 양념도 좀 치고 그래야죠.”
91년 영화계에 입문, 95년 우노필름을 차려 ‘비트’ ‘8월의 크리스마스’ ‘처녀들의 저녁식사’ ‘유령’ ‘플란다스의 개’를 제작했으며 싸이더스로 몸집을 불린 뒤 ‘무사’ ‘화산고’ 등 대작들도 제작했다. 최근 음반 사업부 등을 ‘싸이더스 HQ’로 분리시킨 그는 앞으로 영화 사업에 전념할 계획이다.
▼사회현실 담는 리얼리스트 최고감독 이창동 ▼
최고의 영화 감독으로 뽑힌 이창동 감독(48·사진)은 설문 결과를 듣고 느릿한 목소리로 “이 분야에서는 각자가 다 최고라고 생각한다”며 “굳이 뽑는다면 나는 임권택 감독님이 최고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고로 뽑혔다는 것은 그만큼 기대를 많이 한다는 뜻 같은데 다음에는 최고로 꼽히지 않도록 해야겠다”며 허허, 웃었다.
1980년대 ‘녹천에는 똥이 많다’ ‘소지’ 등으로 호평을 받던 소설가였던 그는 마흔셋에 영화 ‘초록물고기’로 데뷔했다. 두번째 작품은 한국 영화의 수확으로 손꼽히는 ‘박하사탕’.
그리고 세 번째 작품인 ‘오아시스’로 지난해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했다.
그는 요즘 다음 작품을 준비중이다. 생각을 정리한 뒤 글로 옮기는 스타일이라 시나리오는 아직 머릿속에서 있다.
리얼리즘의 시각에서 사회와 현실을 냉정하게 담아온 그는 다음 작품에 대해 “이전 작품보다 더 어렵고 관객과 소통이 쉽지 않을것 같다”고 말했다.
▼"연기력?아직 멀었는데…" 최고 남배우 설경구 ▼
“최고이고 연기력이 뛰어나다고 인정해주신 건 고맙지만, 저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해요.”
‘최고의 배우’이자 ‘연기력이 가장 뛰어난 배우’에 꼽힌 설경구 (36·사진)는 요즘 ‘실미도’ 촬영을 앞두고 살을 빼느라 ‘하드 트레이닝’중이다.
한양대 연극영화과 86학번인 그는 96년 영화 ‘꽃잎’의 단역을 시작으로 영화에도 출연했지만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배우였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 ‘모스키토’에 출연한 경력으로 충무로보다 대학로에서 더 알려졌을 정도. 그러나 99년 ‘박하사탕’으로 영화 인생이 바뀌었다. 그가 꼽은 자신의 대표작 역시 ‘박하사탕’이다. 이유를 묻자 “그 뒤로 연기를 해서 먹고 살 수 있게 됐으니까”하면서 웃는다.
그는 “그동안 너무 강렬한 캐릭터들만 연기해온 탓에 ‘강렬한 연기’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가 늘 부담스럽다”고 한다.
“내가 잘해왔다기보다 감독, 작품을 잘 만난 것일 뿐예요. ‘연기력이 뛰어나다’는 말보다 ‘작품이 참 좋다’는 말이 배우가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라고 생각합니다.”
▼맡는 역마다 변신 '팔색조' 최고 여배우 전도연 ▼
‘팔색조’ ‘변신의 귀재’ ‘스크린의 여왕’ 등 많은 별명을 갖고 있는 전도연(30·사진)이 이번 설문 조사에서도 ‘최고의 여배우’이자 ‘연기력이 가장 뛰어난 여배우’에 동시에 올랐다.
전도연은 “좋은 감독과 스태프, 작품 덕에 과분한 평가를 받는 것 같다”며 “한국 영화 발전을 위해 정진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말했다.
그는 1992년 MBC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으로 데뷔한 뒤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나 97년 ‘접속’을 통해 스크린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톱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조폭 보스와 사랑을 나누는 당찬 여의사 ‘약속’(1998), 순진무구한 시골처녀 ‘내 마음의 풍금’(1999), 불륜의 스릴을 만끽하는 섹시한 유부녀 ‘해피엔드’(1999), 은행원을 짝사랑하는 수줍은 학원강사 ‘나도 아내가 있었으면 좋겠다’(2001), 3류 인생을 사는 여건달 ‘피도 눈물도 없이’(2002) 등 출연 영화마다 ‘천의 얼굴’을 보여줬다.
▼설문에 답한 분들(무순) ▼
▽기획/제작/투자=이춘연 김인수 김광수 조철현 이승재 최평호 최낙권 지형준 김형준 유희숙 정태원 황우현 최진화 오기민 황필선 오정완 심재명 이태원 차승재 최완 조성규 이강복 홍지용 이준익 지미향 노종윤 김미희 석동준 박무승 김승범 ▽감독=김지운 봉준호 김홍준 김상진 이 은 정초신 이광모 박찬욱 류승완 강우석 이시명 윤제균 ▽마케팅/배급=주필호 심희장 심 영 김길남 김민지 신유경 이선희 채윤희 서영주 정승혜 황인옥 최용배 이희주 최종윤 윤숙희 박동호 ▽평론=전찬일 조희문 김소영 주유신 김시무 김봉석 조혜정 김영진 심영섭 김의찬 김소희 이용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