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의 유산과 남북 관계▼
15일 열린 두 번째 패널에서는 임기를 열흘가량 남긴 김대중(金大中)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한반도 주변국 전문가들의 엄정한 평가 및 결산이 이뤄졌다.
주제발표를 한 스티븐 보즈워스 전 주한미대사는 햇볕정책의 긍정적 유산으로 △한국이 처음으로 평양과의 정책협상 테이블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남북한간의 활발한 교류가 이뤄졌고 △북한의 고립을 완화시켜 예측불가능한 부정적 행동보다는 안정유지에 관심을 갖게 한 점 등을 꼽았다.
그러나 보즈워스 전 대사는 △국민과의 대화 및 설득 노력 부족 △햇볕정책 열매를 가시화시키는 데 치중 △투명성 부족 △국민적 컨센서스 형성 실패 △국내 정치 기반을 감안하지 않은 채 많은 경제지원 약속을 해줌으로써 결과적으로 북한의 실망감을 키운 점 등을 햇볕정책의 단점 및 한계로 지적했다.
이즈미 하지메(伊豆見元)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햇볕정책의 성과는 평가하지만, 왜 한국정부가 그동안 한반도 비핵화와 안보 문제에는 진지한 노력을 쏟지 않았는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한나라당 서상목(徐相穆) 전 의원은 “햇볕정책은 △정치논리가 경제에 개입, 국민에게 무거운 경제적 부담을 안겼고 △컨센서스 형성 노력을 하지 않음으로써 사회를 이데올로기적으로 분열시키고, 한미 갈등을 불러 왔으며 △국민의 안보의식이 해이해졌고 △불투명한 현금지원으로 북한 정권의 체제유지를 도왔다”고 주장했다.
서 전 의원은 이어 “이 같은 실패는 지원만 해주면 북한이 변할 것이라는 잘못된 인식, 그리고 너무 확신에 찬 나머지 반대의견을 경청하지 않은 김 대통령의 경직된 태도에서 비롯됐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연세대 문정인(文正仁) 교수는 “확신이 없이는 비전도 없다”고 반박하면서, “햇볕정책의 한계로 △5년 안에 너무 많은 것을 이루려했던 의욕 과잉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있어 미흡했던 점을 들 수 있지만, 햇볕정책이 남북관계에 미친 지대한 공헌은 긴 역사 속에서 입증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 교수는 또 “한국과 미국 모두 주권 국가이므로 이견이 있을 수 있는데, 한미갈등을 모두 김대중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반박했다.
민주당 유재건(柳在乾) 의원도 “비판과 충고는 좋지만 대북정책은 긴 관점에서 봐야 한다”며 “안보의식이 해이해지기는커녕 젊은이들의 안보의식은 더욱 튼튼해졌으며, 북한에서는 김정일(金正日)의 상하이 방문 등에서 보여지듯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로버트 아인혼 전 미국무부 차관보는 “남북관계에서 핵문제를 분리할 수 없으며, 1994년에 합의됐던 핵 이슈가 다시 돌아왔다”고 지적했으며, 마커스 놀란드 미 IIE 연구원은 투명성 문제를 지적하며 “앞으로는 대북정책의 투명성이 높아질 수 있을지”를 물었다.
이에 문 교수는 “실패에서 배우지 못하면 지도자가 아니다”며 “노무현 당선자는 북한의 핵보유는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갖고 있으며, 군사적 선택은 배제하지만 단호하게 핵이냐 경제생존이냐를 선택하도록 할 것이며, 북한이 협조하지 않을 경우 금강산개발 개성특구 문제 등을 협상의 힘으로 사용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진념(陳稔) 전 경제부총리는 정치논리가 경제에 개입했다는 지적에 대해 “공직에 있을 때 정치와 경제논리의 분리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반박했다.
일본 후나바시 요이치(船橋洋一)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는 “투명성 문제 외에도 북한의 인권 문제와 탈북 난민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에 대해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이에 문 교수는 “인권과 ‘인간적 최소 요구(human need)’는 구분되어야 한다. 새 정부는 탈북자 문제에 대해 적극적 관심을 갖되, 직접 개입하지 말고 비정부기구(NGO)를 통해 대처해야 한다”고 말했다.
찬반이 첨예하게 나뉜 격렬한 토론 결과 참석자들은 “대화를 통한 평화 정착과 협력이라는 대북 정책 기본 방향에는 공감하되, 햇볕정책이 드러낸 투명성 결여, 컨센서스 마련 노 부족 등은 앞으로 반드시 시정되고 조정되어야 한다”는 데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팰러앨토〓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북한문제에 대한 다자간 협력▼
15일 열린 패널3에서 중국 러시아 대표들은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다자간 협력체제 구축을 촉구했으나 북한에 대한 압박 외교에는 반대한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주제발표에 나선 장이성(張乙生) 중국 국제전략기금회연구부주임은 “일본이 주장하는 5+1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북한) 해결방식은 북한이 협상 초기과정에서 고립될 수 있으며 압박외교에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중국으로선 수용하기 어렵다”며 “다자간 협력체제 내에서 대북 압박외교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주임은 “다자간 협상의 목표는 북-미 대화를 이끌어내는 데 두어야 하며, 북-미간 대화 협상이 재개된 후에는 국제사회가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바탕으로 장기적 평화를 목표로 한 새로운 패키지 타결안을 이끌어내야 한다”며 “이 타결안에는 현존하고 있는 여러 안보문제의 제거와 북한 체제 보장 재확인이 포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브게니 바자노프 러시아 외교아카데미 부원장은 “러시아는 대북 유화 정책을 환영하고, 특히 김대중(金大中) 정권의 햇볕정책과 노무현(盧武鉉) 정권의 북한과의 대화 지속을 전적으로 지지한다”며 “러시아는 한반도 상황 해결에 있어 중국과 일본이 보다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전혀 관여하지 않을 것이며, 남북 통일을 막을 아무런 정치적 이유도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만약 미국이 북한에 대해 압박외교를 단행할 경우 분명히 반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로버트 아인혼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답답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북핵 문제가 현재에 도달한 과정과 결과의 연계고리를 생각하지 않은 채 다들 너무 철학적으로만 얘기하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오카모토 유키오(岡本行夫) 일본 오카모토 어소시에이츠 대표는 “북한은 향후 잠정적으로 핵 개발 프로그램을 중단할 것이나 핵 개발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다자간 협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한반도 주변국 대표들은 한목소리로 한국이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나 중국의 역할에 대해서는 러시아 대표는 핵심적 역할을 주문했으나, 중국 대표는 역할 분담을 강조해 상당한 차이를 드러냈다.
팰러앨토〓이기홍기자 sechepa@donga.com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