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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은 생명이다]물의이용 ③빗물도 돈이다

입력 | 2003-02-17 18:28:00

베를린 영화제가 열리는 ‘포츠담 광장’ 한복판의 인공 빗물 연못. -동아일보 자료사진


▼독일의 철저한 재활용▼

독일 베를린 남쪽 랑크비츠구 뢰데벡스가의 서민아파트 단지. 이곳의 3층 아파트 3개동은 독일에서 수돗물을 가장 적게 쓰는 곳 중 하나다. 1인당 하루 물 소비량이 65L다. 물을 아껴 쓰기로 유명한 독일인의 평균 물 사용량(129L)의 절반 수준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특별한 절수제품을 쓰는 것은 아니다. 비결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빗물을 재활용한 것이다. 이 아파트에는 빗물을 모아 내려보내는 홈통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옥상에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 지하탱크로 보내는 기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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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의 저장탱크는 아파트 부지는 물론 주변 도로에 떨어지는 빗물도 모은다. 최대 저장 능력은 180t. 1년간의 저장량은 이 지역 강우량의 3%에 해당하는 양이다. 이 빗물은 모래와 자갈층을 통과시키는 자연여과와 미생물을 키워 유기물을 갉아먹게 하는 과정을 거친 뒤 다시 자외선으로 살균처리를 한다.

이렇게 정수된 물에 유기물질이 얼마나 섞여 있는지를 보여주는 용존유기탄소(DOC) 양은 1L에 2mg 이하에 불과하다. 독일 수돗물 기준치(3.5mg)보다도 적기 때문에 마셔도 되는 물이다. 이곳 주민 83가구 200여명은 이 물을 화장실용수와 정원용수, 청소용수 등 허드렛물뿐만 아니라 세탁용수로까지 쓴다.

독일 베를린 남쪽 랑크비츠구 뢰데벡스가의 서민 아파트. 이 아파트 주민들은 벽의 홈통을 통해 옥상에 떨어지는 빗물을 모아 활용함으로써 수돗물 사용량을 절반으로 줄였다. -베를린=권재현기자

독일 정부의 지원으로 선정된 시험단지인 만큼 설치비는 아직 무료다. 이 프로젝트를 총괄한 엔지니어 에르윈 놀데는 “이곳의 빗물 재활용 설비를 유료화한다면 가구당 4000유로(약 520만원)를 부담해야 한다”며 “그러나 가구당 연간 200∼320유로의 물값을 절약할 수 있어 12년 정도면 손익분기점이 된다”고 설명했다.

독일에서 빗물 재활용은 수돗물값 절약 외에도 또 다른 혜택을 가져다 준다. 베를린시는 2000년부터 주택, 상가, 공장 등 모든 건물과 그 부지에 하수처리 비용과 별도로 빗물처리 부담금을 받기 시작했다. 하수도에 빗물이 유입되면 처리용량을 넘어 도심의 홍수를 유발한다는 이유로 원인제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자기 집과 건물에 떨어지는 빗물의 처리에 대한 부담금을 물린 것.

이 제도에 따라 베를린 시민은 누구나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건물과 부지 1㎡ 당 연간 1.5유로(약 1950원)씩을 내야 한다. 주차장 백화점 등도 예외가 없다. 한국의 25.7평 국민주택 규모(85㎡)에 사는 가구는 연간 16만5000여원의 돈을 빗물처리비로 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베를린뿐만 아니라 독일 전역의 자치단체가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이 때문에 독일에서는 지붕에서 빗물을 받아 지하 저류탱크에서 침전시킨 뒤 다시 재활용하는 집이 매년 5만∼6만여 가구씩 늘고 있다. 또 빗물부담금을 피하기 위해 건물 옥상을 정원으로 가꾸거나 아스팔트 포장 부지를 녹지로 바꾸는 건물도 늘고 있다.

베를린의 새 도심으로 건립된 포츠담광장의 19개 복합건물 옥상의 대부분이 흙으로 덮여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이곳에는 매년 2월 베를린영화제가 열리는 마를린 디트리히광장과 극장들, 그리고 다임러크라이슬러 본사 건물 등이 들어서 있다.

이곳에 떨어지는 빗물은 3가지 방식으로 활용된다. 우선 4만㎡ 면적의 옥상 정원을 통해 연간 2만3000t가량의 빗물을 저장한다. 또 1만3000㎡에 이르는 인공연못(담수능력 4000t)의 물로 활용한다. 이 연못에는 금붕어 등 500여마리의 물고기가 살고 있다.

이렇게 쓰고 남는 빗물은 인공연못 한쪽에 마련된 인공습지를 통해 1차 정수를 한 뒤 다시 다임러크라이슬러 건물 지하의 저장탱크(3500t)에 모아 자외선으로 살균한 뒤 2개 건물의 화장실용수로 쓴다.

이 2개의 건물은 다름 아닌 다임러크라이슬러빌딩과 베를린영화제 기간에 세계 최고의 스타들이 묵는 350실 규모의 하야트호텔이다.

베를린=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한국 빗물 26%만 활용, 녹지늘려 증발 막아야▼

“빗물은 대체 수자원이 아닌 수자원 그 자체다.”

서울대 지구환경시스템공학부의 한무영(韓武榮) 교수는 빗물의 가치를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했다.

지구 담수자원의 수원은 크게 빙설과 빗물로 나뉜다. 빙설이 거의 없는 한국의 경우 유일한 수자원의 원천은 연평균 1276억t에 이르는 빗물뿐이다. 이 중 545억t은 증발돼 사라지고 731억t이 땅으로 흘러간다. 이 중 400억t은 바다로 바로 흘러가 버리고 남은 331억t의 물만이 댐, 하천, 지하로 흘러가 이용된다. 결국 빗물의 26%만을 쓰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이 26%의 물도 결국은 바다로 흘러든다. 다만 지상에 체류하는 동안 사람들에 의해 이용될 뿐이다. 따라서 물 순환의 측면에서 빗물이 지상에 머무는 시간이 얼마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급속한 도시화로 콘크리트와 아스팔트 등의 불투수층이 증가하면서 숲이나 토양 같은 빗물의 ‘상주공간’은 물론 빗물의 ‘체류시간’도 줄어들고 있다는 게 문제다.

슬로바키아의 수문학자 미할 크라브칙은 빗물이 도로나 건물로 떨어지면 지하로 흡수되지 못하고 바로 강이나 바다로 흘러들어 사용 가능한 물은 줄고 바다 수위는 높아진다고 경고한다. 실제 슬로바키아에서는 2차대전 후 급격한 도시화로 습지와 웅덩이가 줄면서 이용 가능한 민물이 매년 1%씩 줄어든 것으로 조사됐다.

국민에게서 빗물 처리부담금을 거두는 독일의 빗물 처리부담금제는 이런 위기의식 외에도 홍수방지와 도시의 열섬 현상을 방지하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다. 콘크리트 건물과 포장도로의 증가는 빗물이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속도를 높여 홍수피해를 더욱 크게 한다. 반면 건물 옥상을 녹화할 경우 녹지의 증발작용을 통해 도시의 복사열을 58%까지 떨어뜨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베를린=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전문가 의견▼

선진국에서 생활해 본 사람들은 주택이나 생필품 등의 소비자물가에 비해 사회기반시설(SOC)에 해당하는 지하철 버스 전기 가스 수도 등의 공공요금이 엄청나게 비싼 것에 놀라게 된다. 그러나 높은 공공요금으로 자원 절약이 생활화되고, 사회기반시설 또한 잘 정비될 수 있음을 알게 되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우리나라의 공공요금은 왜 이와 반대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을까? 첫째, 손쉬운 공공요금 인상 억제로 물가를 잡으려는 정부의 물가정책 때문이다. 둘째, 공공요금 인상에 대한 즉흥적이고 맹목적인 비판이 국민 여론을 오도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악순환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수도요금이다. 현재 지방 상수도 요금은 생산원가의 86% 수준으로 원가에 훨씬 못 미친다. 프랑스와 독일의 물값은 우리의 5배가 넘으며, 심지어 독일은 빗물처리 부담금까지 거두고 있다. 우리나라의 생수 가격만 보더라도 수돗물 값의 1400배나 된다. 이와 같은 비현실적인 요금체계가 물 낭비를 조장하고 공급시설의 부실을 초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우리에게 물 부족 문제는 먼 훗날의 일이 아니다. 2011년에는 전국적으로 팔당댐 저수량의 약 8배에 달하는 20억t의 물 부족이 예상된다. 그 대책은 무엇인가. 댐 건설, 현재 18%의 누수율을 보이는 노후관의 교체, 쓴 물을 다시 쓰는 중수도 시스템의 권장, 지하수 개발·해수 담수화·빗물 활용 등 대체 수자원 개발…. 하지만 이런 방법들은 엄청난 돈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수도요금 정상화는 이런 재원 마련을 위한 가장 현실적 방법인 동시에 절수 생활을 유인할 수 있는 일석이조의 방안이다.

김태유 서울대 공대 교수(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