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원사는 신라천년 역사가 서린 비구니 선방(禪房) 사찰이다. 천성산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다. 원효 스님의 역사가 서린 천성산은 백두대간 낙동정맥의 마지막 중추다. 그런데 이곳 천성산 내원사에 천년 역사의 고요를 깨는 파란이 2001년 여름부터 시작되었다. 경부고속철도가 천성산의 심장부를 관통한다는 것이었다. 당시 소식을 접한 천성산 내원사의 스님들은 산이 울고 있다고 느꼈고, 산이 도와 달라고 애원하는 소리를 들었으며, 그래서 당연히 뭇 생명에게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은 늪 가의 아주 작은 벌레와 이름 모를 꽃들과의 약속이었고, 숲을 지키는 작은 새들과 온 산을 누비는 노루와 고라니들과의 약속이기도 했다.
스님들은 정부가 천성산 고속철도 조기 착공을 발표한 2001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많은 날들을 거리와 행사장에서 고뇌해 왔다. 이는 천성산과 그 속에 사는 뭇 생명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었다. 우리 주위에서 사라져 버린 많은 생명들에게 참회하는 기분으로 천성산을 바라보고, 천성산의 문제를 풀고자 노력했다. 다행히 주위에 우리와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을 만날 수 있었고, 우리의 생각들을 모아 많은 일을 함께할 수 있었다.
뜻을 함께하는 분들과 국토순례, 범시민대회, 삼보일배, 신부님과 수녀님들의 거리 미사와 음악회, 토론회, 자전거 투어, 일인 시위 등의 행사를 거행해왔다. 지난 1년 6개월간은 벅찬 가슴과 슬픈 감정이 무수히 교차하는 시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작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민주당과 노무현 당선자는 ‘금정산,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백지화’를 가장 중요한 환경문제의 현안이자 불교계의 제1공약으로 제시했다. 또한 올 1월 22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박준경 경제2분과위원과 김은경 사회문화위원 등이 우리 지역의 대표들이 함께한 자리에서 재차 현재 진행되는 일체의 공사를 중단하고 공사 발주도 취소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인수위에서는 건설교통부의 천성산 공사계약(2월 7일)을 나 몰라라 했다. 더욱이 박 위원은 10명이 모인 자리에서 한 공식적인 발언조차 ‘내가 언제 그랬느냐’며 말 바꾸기를 하고 있다. 한없는 슬픔이 밀려왔다. 인수위가 이렇게 행동하는 것은 자신들이 공약하고 약속한 것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다.
이번 일은 새 정부의 환경과 행정의 척도를 가름하는 계기로서 심각한 우려를 낳고 있다. 천성산 문제의 중심은 심각한 환경재앙에 대한 경고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앞말과 뒷말이 다른 무책임한 정당과 관료사회에 대한 뭇 생명들의 준엄한 경고의 종소리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는 부산시청 앞에서 천성산 고속철도 관통 반대를 위해 열흘 넘게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이번 결행은 우리의 염원을 담은 반성과 성찰이며, 말없는 산에 도와주겠다고 했던 처음의 약속을 잊지 않기 위한 마음의 기도다. 우리의 염원과 기도가 헛되지 않도록 많은 국민의 관심을 부탁드린다. 아울러 새 정부 관계자들의 자성으로 경부고속철도 금정산, 천성산 관통이 백지화되고 새로운 노선이 결정되기를 기원한다.
지 율 스님·경남 양산 천성산 내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