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시내에서 컴퓨터 교육을 받고 있는 전융남(全隆男·62·대구 남구 대명2동)씨는 평소처럼 18일 오전 9시50분경 집 근처 대구교육대 전철역에서 지하철을 탔다. 5호 객차였다.
다음 역인 명덕로터리역에 도착하자 푸른색 체육복을 입은 허름한 차림의 50대 남자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들어섰다. 손에는 두툼한 천가방이 들려 있었다. 그는 전씨의 맞은편에 앉았다.
지하철이 반월당역을 거쳐 대구에서 가장 번화가인 중앙로역을 향해 달리자 방화용의자 김모씨(56·대구 서구 내당동)가 전철 의자 옆에 놓아둔 가방 속에서 플라스틱 우유통을 꺼냈다.
“우유를 마시려나 생각했지요. 근데 이 사람이 왼쪽 호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는 거예요. 몇 번이나 라이터를 켰지만 불이 붙지 않았어요. ‘왜 지하철에서 자꾸 라이터를 켜느냐’고 나무랐어요.”
지하철이 중앙로역에 도착해 객차 문이 열리는 순간 김씨가 들고 있던 라이터에서 불꽃이 솟았다. 승객들이 놀라는 모습이었다. 전씨가 ‘큰일났구나’ 생각하며 김씨에게 달려들었다. 승객 3, 4명도 방화를 직감하고 용의자 김씨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객차 안은 순식간에 불길에 휩싸였다. 우유통에 담긴 기름이 이미 객실 바닥에 엎질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펑’ ‘펑’.
객차 의자 밑 라디에이터에 불길이 옮아 붙으면서 폭발음이 잇따랐다. 시커먼 유독가스가 객차 밖으로 뿜어져 나왔고 지하철역 천장을 뒤덮기 시작했다. 수백명의 승객이 놀라 지하철역 출구로 통하는 계단 쪽으로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방화용의자 김씨의 체육복에도 불이 붙었다. 전씨는 40대 승객 한 명과 함께 김씨의 옷에 붙은 불을 꺼줬다.
“연기가 목으로 차올라 지하철역 주변에는 더 이상 있을 수 없었어요.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보다 ‘빨리 탈출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지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불가항력이었습니다. 용의자의 옷에 붙은 불을 대충 끈 뒤 허겁지겁 바깥으로 빠져 나왔어요.” 김씨도 아비규환의 상황을 틈타 출구로 달아났다.
불은 맨 앞 객차 전체에 번진 후 이 열차에 달려 있던 나머지 5량의 객차로 차례차례 옮아 붙었다. 평온하던 중앙로역이 연기로 인해 순식간에 암흑천지로 바뀌면서 ‘살려달라’는 비명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승객들은 휴대전화를 꺼내 경찰과 가족에게 사고 소식을 알리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쳤다. 이미 출구는 검은 매연에 가려 보이지 않는 상황이었다.
연기와 불기둥이 지하철역으로 확산되었지만 승객들은 속수무책이었다. 특히 움직임이 둔한 노약자와 여성들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다 상당수가 질식해 변을 당했다. 승객들은 “워낙 갑작스러운 상황이어서 주위를 돌아볼 겨를이 없었다”고 말했다. 화재로 발생한 연기가 마치 굴뚝을 타고 올라가듯 출입구 쪽을 막아버리는 바람에 혼란은 더했다.
용의자 김씨는 지하철역 출구 쪽에 쓰러져 있다 발견돼 대구 북구 노원동 조광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후 경북대 병원으로 옮겨졌다. 김씨는 방화 2시간 만에 같은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목격자들의 신고로 경찰에 붙잡혔다.
특별취재팀
대구=이권효기자 boriam@donga.com
▼검거된 방화용의자▼
18일 발생한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방화사건 용의자 김모씨가 경북대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연합
대구지하철 전동차 방화 사건 용의자 김대한(金大漢·56)씨는 우울증을 앓고 있던 뇌중풍 환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김씨는 대구 서구 내당4동의 2층짜리 서민 주택에서 환경미화원인 부인과 장성한 아들, 딸과 함께 살았다.
김씨는 2001년 4월 뇌중풍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택시기사로 일했으며 그 이전에는 6년간 화물차 운전사로 일해왔다.
그는 뇌중풍에 걸린 뒤 실어증, 우측 반신 마비 등 각종 증세가 나타나 ‘뇌병변 장애2급’ 판정을 받기도 했다.
또 2002년 8월부터는 신병을 비관하는 말을 자주 하는 등 우울증이 심해져 정신과 치료를 받은 적도 있다.
병원 관계자는 “김씨가 뇌중풍으로 실어증과 우측 반신 마비 증상이 있었는데, 중증은 아니어서 걸어다닐 수 있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김씨는 두 달간 입원 치료를 받은 이후 한 달에 한번 꼴로 통원 치료를 받았다는 것.
사건 발생직후 대구 중부경찰서에 출두한 아들 김모씨(27)는 “아버지가 심한 우울증으로 자포자기해왔고 남의 말도 잘 알아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아들 김씨는 “아버지가 뇌중풍에 걸린 후 완치되지 못한 것을 의사의 잘못이라고 말해왔다”며 “TV에서 가끔 지하철 사고 장면을 볼 때마다 ‘나도 지하철에서 뛰어내려 죽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고 전했다.
가족들에 따르면 김씨는 2001년 뇌중풍 치료를 받은 이후 여러 차례 가출했으며 지난해 여름에는 파출소에서 ‘데려가라’는 연락이 와 가보니 “당신 아버지가 다리에서 뛰어내려 자살하겠다고 해 데려왔는데 우리(경찰)에게 ‘당신들 총이 있으니 날 좀 죽여달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밖에 김씨는 올 1월 대구 보훈병원 응급실에 찾아가 당직의사에게 ‘날 좀 죽여달라’고 말하며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이 바람에 가족들이 그를 파출소에서 2번, 병원에서 2번 등 모두 4번이나 연락을 받고 데려왔다는 것.
가족들은 “아버지가 올 초에는 휘발유 통 2개를 사왔기에 ‘왜 이런 것을 샀느냐’고 물어보니 ‘내 병을 엉터리로 치료한 의사를 죽이겠다’고 말해 설득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경찰은 이날 김씨가 범행에 사용한 휘발유는 사건 발생직전 집 근처 주유소에서 산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 당일 가족들은 모두 일터로 나가고 김씨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아들 김씨는 “오전 8시쯤 출근하기 전 아버지가 자고 있기에 깨워 ‘다녀오겠다’고 말한 뒤 집을 나섰다”며 “(아버지가) 무슨 일을 저지를 낌새는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편 김씨의 이웃들은 “뇌중풍에 걸린 뒤 인적이 드물 때 산책하는 모습을 가끔 봤는데 특별히 이상한 점은 없었고, (김씨 집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난 적도 없었다”며 당혹스럽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대구=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