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덩어리에 사는 한국인들은 건축에 민감하다. 건축은 ‘미(美)’의 문제인 동시에 중요한 시사 이슈이기도 하다.
건축가 김진애(金鎭愛·50)씨. 그와 건축 얘기를 하다 보면 실타래처럼 얽힌 사회 문제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등장한다. 경기 군포시 산본신도시 개발, 인사동길 재단장 등 굵직굵직한 도시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했던 그는 한국 사회에서 건축이 가지는 정치·경제·교육·환경적 함의(含意)를 잘 알고 있다. 행정수도 건설 문제가 불거진 요즘이다.
그에게는 ‘논쟁적’ ‘정치적’이라는 평가가 자주 따라다닌다. 건축에 대한 소신을 딱 부러지게 밝히는 편이기 때문이다. “너무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주변의 일부 우려에 대해 그는 오히려 “건축가들이 ‘도구적 존재’로 전락한 현실이 슬프다”고 반박한다.
●‘조화’의 건축이 좋다
김 대표는 서울 논현동에 서울포럼이라는 건축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주택가에 있는 이곳은 유명 건축가의 사무실답지 않게 평범 그 자체이다. “건물이 너무 얌전한 것 아니냐”고 묻자 김 대표는 “튀지 않는 것이 나의 건축 모토”라고 답한다. 외모에서, 걸쭉한 목소리에서, 직설적인 화법에서 상당히 튄다는 인상을 주는 그가 튀지 않는 건축을 좋아하다니….
“따로 떨어져 있으면서 근사한 건축보다 길거리에서 봤을 때 조화를 이루는 작품이 좋습니다. 요즘 대형 유리와 철골로 돼서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건물들 많죠. 일단 보기에는 근사하지만 주변 경관이 웬만큼 받쳐주지 않으면 나 홀로 도드라지기 십상이죠.”
그는 건축이 본질적으로 자연에 죄를 짓는 일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죄를 덜 짓기 위해서는 자신이 설계하는 건물이나 도시에 될 수 있으면 과다한 치장을 삼가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이 설계한 건축물 중에서 ‘히트작’을 꼽아 보라고 하자 그는 손을 내젓는다.
“말했잖아요. 내 건물은 요란하지 않다고. 눈에 확 띄는 작품은 없어요. 그렇지만 저한테 건물을 맡기면 믿을 만하다는 평가를 듣습니다. 이래봬도 오래가고 실용적인 건물을 만들거든요.”(웃음)
그는 “내가 너무 자화자찬했나” 하더니만 이내 “뭐 어때요. 50, 60세대가 되고 보니 이게 좋아요. 내 자랑 한참 늘어놔도 사람들이 별로 밉게 안 보거든요”라고 넘겨버린다.
●‘조정자’의 역할이 좋다
조화를 중시하는 그의 건축 철학은 3년 전 맡았던 서울 인사동길 조성 계획에서도 잘 나타난다. 당시 인사동의 새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은 “창의적인 디자인은 없고 너무 전통적으로 꾸미려고 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런 얘기들에 대해 그는 “길거리는 무대”라고 반박한다.
“무대가 너무 요란하면 배우가 안 보이는 법이죠. 길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편하다고 느끼고, 그곳에서 뭔가 추억을 남길 수 있다면 그게 성공한 디자인 아닐까요.”
그는 이 밖에도 ‘(서울) 사대문 안 역사문화 탐방로 조성 계획’ ‘부산 수영정보단지 마스터플랜’ ‘미디어시티서울 2000 옥외공간 계획’ ‘도쿄세계도시박람회 서울전시관’ 등 관(官) 주도 계획을 많이 맡았다.
그가 대형 정부 프로젝트를 선호했던 것은 설계, 토목, 조경, 그래픽디자인 등 건축의 여러 요소들을 한꺼번에 접목할 수 있었기 때문. “1970년대 말 ‘행정수도 건설 백지 계획’에 참여하면서 건축의 묘미를 처음 깨달았다”는 그는 “지금도 ‘건축가’보다 ‘조정자(코디네이터)’라는 호칭이 더 좋다”고 말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그의 의견이 궁금하다.
“행정수도 이전은 균형 발전보다는 행정 혁신의 차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도시가 완성되는 데는 20∼30년 걸립니다. 일본도 10년 넘게 아직 결정을 못 내리고 있죠. 이 문제는 국민투표에 부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는 인사동길 설계 이후 주로 개인 주택과 오피스텔 건축에 매달리고 있다. 스케일이 작은 건축물로 돌아선 이유에 대해 그는 “정부 프로젝트 입찰과 용역에 ‘학’을 뗐다”면서 “대형 설계를 안 맡아서 그런지 요새 비즈니스도 예전만큼 못하다”고 털어놓는다.
●‘선진 콤플렉스’가 싫다
그는 한국 건축계의 선두 주자 중 한 사람이건만 건축가에 대한 꿈은 애당초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 적성검사에서 여성들이 비교적 약하다고 하는 공간지각력과 구조추리력에서 탁월하게 높은 점수를 받은 그에게 선생님은 건축가가 될 것을 권했다. 70년대 초 ‘7년 만의 첫 여자 공대생’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서울대 건축공학과에 들어간 그는 졸업 후 남편과 함께 미국에 가서 매사추세츠공과대(MIT)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대학 때까지 공부에 큰 취미를 붙이지 못하던 그는 MIT에서 건축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게 됐다. MIT는 건축 분야에서 최고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한국의 교육 시스템과는 다른 그 무엇이 그를 끌어당겼다.
“본질적인 것을 배웠죠. 무엇보다 교육은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만드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건축을 단순히 도구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까지도 연구하는 학문으로 보는 그들의 시각이 좋았습니다.”
한국과 서구 국가들간 건축의 차이점에 대해 묻자 “서구 건축에는 눈에 보이는 질서가 강력하게 자리잡은 반면 한국에는 ‘잡종’ 건축이 많다”고 설명한다. 한국에는 장기적인 계획이 아니라 순간의 필요에 따라 즉흥적으로 만들어지는 건축이나 도시가 많다는 뜻이다.
“미국과 유럽에 비해 한국의 건축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둘은 서로 다를 뿐 우열을 따질 수는 없습니다. 외국인들은 우리 도시에 매력을 느끼는데 왜 우리 자신은 그렇지 못한지 모르겠어요.”
요즘에는 한옥식 온돌과 마당 설계에 관심을 쏟는 고객이 늘었다. 그래도 우리 건축에는 ‘선진 콤플렉스’가 굳건히 자리잡고 있다. 그에게는 외국 명품으로 도배한 주택 설계를 요구하는 고객이 아직도 많다.
그는 “타워팰리스 같은 초고층 아파트가 절대적으로 나쁘다고는 할 수 없다”면서 “다만 우리나라에는 역사 유물이 가까이 있는 곳이나 중저층으로 이뤄진 동네, 지반이 탄탄하지 못한 곳, 심각한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곳이 많으므로 이런 곳들을 피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이런저런 건축을 많이 해본 그가 아직도 도전해 보고 싶은 분야가 있다. 절을 설계하는 것이다. “여자에게는 안 맡긴다고 하죠. 그렇지만 언젠가는 한번 해 보렵니다.”
▼김진애 대표는…▼
△1953년 서울 출생
△1975년 서울대 건축공학과 졸업
△1982년 미 매사추세츠공과대(MIT) 건축학 석사
△1987년 MIT대 도시설계학 박사
△1988∼1990년 대한주택공사 주택 연구소 도시계획실장
△1992년 서울포럼 대표
△주요 설계작품:산본신도시, 인사동 길, 경복궁길, 미디어시티2000 옥 외공간, 부산 수영정보단지
△저서:‘서울성(性)’ ‘이 집은 누구인 가’ ‘새로운 종(種)의 여자 메타우먼’ 등 15권
△가족:남편(한국과학기술연구원 재 료연구부장)과의 사이에 1남 1녀
△취미:옷 만들기, 글쓰기
△좌우명:‘일을 한다, 일을 즐긴다,일을 만든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
▼김진애씨가 뽑은 괜찮은 건축▼
경동교회
건축가들에게는 각각의 성향이 있다. 김진애 서울포럼 대표는 도시설계는 물론 주택 오피스텔 등 일반 주거용 건축은 전문이지만 관공서 연구기관 병원 등 공공 건축물은 거의 해본 적이 없다.
그는 “공공건물치고는 괜찮은 건물이 귀하다”고 말한다. 서울이건 지방이건 누구 입에도 씹히지 않을 만큼 무난하기는 하지만, 쓰기에 맛없고 보기에 멋없는 건축물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공공건물이 이처럼 천덕꾸러기가 된 데는 ‘집주인’이 없다는 것이 커다란 약점으로 작용한다. 발주처인 공공기관들은 실제적인 집주인이 아니기 때문에 입찰에만 신경을 쓸 뿐 설계의 ‘질’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다.
그는 공공건물들이 아름다워지려면 담을 허물고 녹지를 만들도록 권한다. 담을 없애면 공원이 턱없이 부족한 우리 현실에서 공간 활용의 효율을 높이고 특권의식 없는 공간문화를 만들 수 있다는 것.
그렇다면 그가 꼽은 괜찮은 건축물은 어떤 것일까. 그의 목소리가 금방 생기 있게 변한다.
테헤란로
“서울 장충동의 경동교회요. 벽돌 건물로 김수근(金壽根) 선생님의 작품이죠. 교회 건물이고 길거리 쪽으로 많이 나와 있음에도 전혀 위압감을 주지 않습니다.”
그는 거리 중에서는 서울 테헤란로를 성공한 도시설계로 꼽는다. 강남대로에서 삼성로에 이르기까지 쭉쭉 늘어선 고층 건물들이 신기하리만큼 조화롭게 열을 이루고 있다는 것. 거리에 행인이 많고 상권이 발달해서 활기가 느껴지는 것도 이 거리의 큰 장점이다.
정미경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