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갤럭시 유니폼에 친구 황선홍이 달았던 18번을 달고 제2의 축구인생을 열어가고 있는 홍명보. 이 사진은 LA갤럭시 홈페이지에 게재돼 있다.
황선홍(35·전남 드래곤즈 2군코치)은 떠났다. 그러나 그는 죽마지우 홍명보(34)와 함께 여전히 그라운드를 달린다.
19일 스페인 라 망가의 라 망가클럽 풋볼센터에서 열린 2003 라 망가 클럽컵 축구대회 LA 갤럭시와 린 오슬로(노르웨이)의 경기. 미국프로축구(MLS) LA 갤럭시에 진출한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가 절친한 친구 황선홍의 등번호 18번을 달고 공식데뷔전을 치렀다.
홍명보가 당초 원한 등번호는 국가대표 시절 정들었던 20번. 그러나 그 번호는 홍명보가 갤럭시에 입단하기 전 이미 과테말라 출신의 카를로스 루이스(23)가 달고 있었다. 남은 번호 가운데 홍명보는 18번을 골랐다. 바로 친구 황선홍의 등번호. 홍명보는 “선홍이의 은퇴소식을 듣고 그라운드에 그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 18번을 달기로 했다”고 말했다.
홍명보와 황선홍은 대표팀 13년 친구. 홍명보가 학교를 일찍 들어가 나이는 한 살 적지만 둘은 90년부터 대표팀에서 둘도 없는 친구로 지내왔다. 당시 황선홍과 홍명보가 단 등번호가 18번과 20번.
이후 이 번호는 한국축구의 대명사가 됐다. 둘이 대표팀의 ‘맏형’이 된 2002월드컵까지, 4회 연속 월드컵 본선을 밟는 등 70회가 넘는 A매치(국가대표간 경기)에 출전하면서 18번과 20번은 한국축구의 공격과 수비를 상징하는 번호나 다름없었다.
국가대표 은퇴식에서 꽃다발을 든채 나란히 서 있는 홍명보(오른쪽)와 황선홍. 동아일보 자료사진
황선홍은 “명보는 말이 없는 편이다. 곁에서 지켜보면 간혹 화가 난게 아닌가 오해할 정도로 과묵하다. 그러나 일단 친해지면 생각 깊고 의리 있는 남자”라고 말한다. 홍명보는 “98프랑스월드컵때 선홍이가 부상으로 벤치에 앉아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 내가 이럴진대 본인의 마음이야 오죽했을까”라며 당시 안타까왔던 마음을 토로하곤 했다.
홍명보는 황선홍이 부상으로 선수생활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굳이 친구의 등번호를 택한 것도 황선홍의 변함없는 축구 사랑을 알고있기 때문. 이제 황선홍은 비록 등번호로나마 앞으로 2년간 미국 무대를 누빌 수 있게 됐다.
홍명보는 이날 전반 45분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뛰며 허를 찌르는 전광석화와 같은 패스로 상대 수비진을 뒤흔들어 팀의 5-0 완승을 이끌었다. 이로써 홍명보는 갤럭시에 입단한 뒤 치른 세 차례의 연습경기에 모두 선발출장하며 팀 승리에 기여한 데 이어 첫 공식 경기에서도 성공적인 데뷔전을 치렀다.
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