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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덕장의 과메기, 가는 겨울이 아쉽다

입력 | 2003-02-19 18:45:00

과메기 익어가는 겨울 구룡포 해안은 한 겨울에도 봄을 느낄 만큼 햇볕 따사롭고 바람결 부드러운 특이한 곳. 바닷가 식당에 앉아 기름 오른 빠알간 과메기살을 초고추장 찍어 한 입에 넣으면 그 바다가 그대로 내게 들어온다. 구룡포=조성하기자



《날씨도 날씨지만 계절감을 느끼는데는 역시 먹을거리가 으뜸이다. 춘삼월의 봄나물, 한여름의 풍성한 과일, 가을걷이 후의 햇곡식. 그런데 사철 가운데서도 유독 겨울은 옹색한 편이다.

10여 년 전만 해도 꽁꽁 언 연안 명태가 겨울 맛을 대표했지만 원양 산으로 대체 된데다 가격까지 올라 더 이상은 아닌 듯 하다. 그런데 요즘 그 자리를 대신한 것이 있다. 과메기다. 한겨울의 맛으로 새로 자리 매김 한 과메기의 고향 포항시 구룡포를 찾았다.》

포항제철 들어선 영일만. 쪽빛 바다를 왼편 차창에 걸어둔 채 912번 지방도를 따라 남행을 계속했다. 입춘(지난 4일) 지난 지도 벌써 두 주일 여. 봄이라 하기엔 이르고 겨울이라 하기에는 따뜻한 어중간한 시점인지라 호미 곶 풍경에도 오는 봄과 가는 겨울이 뒤섞였다.

갈매기 떼가 바위에 앉아 쉬는 모습에선 봄이, 겨울 맛의 대표선수인 과메기가 덕장에서 익는 모습에선 겨울이 느껴진다. 바닷바람은 여전히 차갑지만 수평선 위 구름과 햇빛은 부드럽기만 하다.

한반도의 최 동단으로 ‘해맞이 1번지’라 할 만한 호미 곶(포항시 대보면). 장기갑(岬)에서 장기곶, 다시 호미 곶으로 10여 년 새 거듭 이름이 바뀐 것만 보아도 범상한 곳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호미 곶이란 이름은 격암 남사고(조선 명종 때 풍수가)가 이곳 지형을 호랑이 꼬리에 해당한다고 기록한 데 따른 것.

고산자 김정호에게도 호미 곶은 숙제였다. 대동여지도를 만들 때 울진의 죽변 곶과 이 곳 중에 어느 곳이 동쪽끝인지 살피느라 일곱 차례나 찾았다고 한다. 그 해묵은 시비는 새 천년 해돋이행사를 앞두고 다시 한 번 벌어졌다. 결론은 호미 곶. 그런 덕분에 호미곶 새 천년 해맞이공원은 일출명소로 새롭게 자리 매김을 했다.

호미곶 해맞이공원을 장식한 거대한 손 조각 ‘상생의 손’ . 호미곶 해맞이 공원에는 볼거리가 다양하다. 첫 째는 등대박물관. 국내 단 한 개 뿐이다. 1908년 세운 팔각형 하얀 등대 옆에 신구 박물관이 나란히 있다. 광장 한가운데서 타오르는 ‘영원의 불’과 그 아래 보관된 불씨 함도 볼만하다. 20세기 마지막 일몰(변산반도)과 새 천년 새아침의 일출(호미곶과 날짜변경선 최동단의 피지)때 채화한 불의 씨다. 영원의 불은 그 불씨의 총합. ‘상생의 손’이라 불리는 초대형 청동 손 조각도 명물이다.

호미곶에서 구룡포로 가는 길(12㎞). 내내 바다를 끼고 달린다. 어촌풍경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다. 갯바위 해안에서는 갈매기 떼 한가로이 자맥질하고 출렁이는 낚싯배에서는 고기 낚는 손이 날래다. 빨간 살에 기름이 자르르르 흐르는 배진 과메기는 바닷바람 속에서 맛있게 익어가고 포구 양지 녘 공터에서는 어구손질에 여념 없는 어민들 손놀림이 바쁘다.

찻길 좁고 오종종 몰린 건물로 옹색하기만 한 시가지. 구룡포읍이다. 억양 억센 갯가 사투리, 넓은 항을 빈틈없이 메운 고깃배, 어항의 공터에 꽉 들어선 과메기 노점과 생선 좌판. 어항 구룡포의 풍경은 소박하기만 하다. 그 구룡포 진면목을 보자면 아침 8시 수협공판장에서 가자. 밤새 잡힌 게 복어 등이 바닥에 좍 깔린 채 경매에 부쳐치고 이내 부리나케 외지로 실려나간다. 인생이 따분하게 느껴지거들랑 구룡포에 올 일이다. 와서 땀 내 절고 비린내 배인 어민 작업복 냄새를 맡고 나면 삶의 활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 패키지 투어 상품

호미곶 해맞이광장에서 해돋이를 본 뒤 구룡포 함흥식당에서 복국(밀복)맛을 보고 등대박물관과 주왕산 국립공원에 들르는 무박2일 패키지가 있다. 5만8000원.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식후경▼

● 구룡포 과메기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한 구룡포. 열대야엔 포항시민이 차를 몰고 달려올 정도다. 이런 날씨가 과메기 맛을 낸다. 원료는 기름기 풍부한 가을 꽁치. 배딴 뒤 가시를 발라 그늘에서 사나흘 말린다. 밤낮으로 살짝 얼다 녹기가 반복되며 바람결에 마르는 동안 배 쪽 기름이 온 살에 고루 퍼지면서 익는다. 그늘에 말려야 비린내가 없다. 20마리 한 두름(진공포장)에 9000원 안팎. 택배 시 1만원. 유봉상사(대표 유봉택) 054-276-8054 011-524-8054

● 함흥식당 복국

‘눈보라가 몰아치는 바람찬 흥남 부두에’라는 노랫말처럼 함흥에서 구룡포로 피난 온 월남민 가정에 시집간 김 필씨(62)가 시어머니가 차린 식당을 대물려 운영 중. 올해로 개업 52년째다. 3년 전 복국골목 철거 후 쉬다가 지난 해 이전 개업했다. 콩나물 넣고 끓여내는 시원한 국물 맛은 잊을 수 없을 정도다. 맛의 비결은 이랬다. “고기(복어) 많이 넣으니까.” 밀복 넣은 복국은 1만원(은복은 6000원). 함흥식 가자미 식혜와 구이, 생 미역, 잡어 회 등 밑반찬도 푸짐하다. 수협 어판장 앞 해병전우회 건물(시장골목) 1층. 054-276-2348

구룡포(포항시)=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