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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시욱칼럼]안보 불안감 해소시켜라

입력 | 2003-02-19 19:23:00


지금 국민은 북한 핵위기와 주한미군의 재조정 움직임으로 불안감에 빠져 있다. 북한 핵문제는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대화를 통해 해결할 자신이 있다고 거듭 말하고 있지만 과연 이 말을 믿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주한미군 재조정 문제 역시 미군 지상병력을 전방에서 빼낸다는 사실 자체도 그렇지만 시기적으로 한반도에 군사적 긴장이 일고 있는 시점이어서 불안감을 심화시키고 있다.

주한미군 재조정 계획을 처음 밝힌 도널드 럼즈펠드 미국 국방장관은 13일 상원군사위 증언에서 미 정부가 지금까지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를 일방적으로 검토했으나 한국의 새 대통령이 한미동맹 관계를 재검토하고 주한미군 배치를 재조정하자고 ‘제안’해 이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마치 노 당선자가 능동적으로 추진하는 듯한 발언이다.

▼‘주한미군 재배치’ 盧의 제안?▼

그러나 미국을 방문한 노 당선자의 특사단에 의하면 럼즈펠드 장관이 이들과의 면담 석상에서 작년에 한미간에 합의된 연합토지관리계획을 꺼내들고 미군기지의 재배치 문제를 집중 거론하기에 새 정부 출범 후 협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원론적 차원에서 답변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서로 말이 다른 것이다.

그런데 정부 당국자들은 이 문제가 이미 99년부터 양국간에 공동 연구되고 있어 최근 들어 어느 일방의 요구로 제기된 것은 아니며, 이로 인해 주한미군 전력의 약화는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한미관계의 미래지향적 발전을 위해서도 남북관계의 발전에 부응하는 수평적 양국 관계의 정립이 중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이런 태도는 대등한 한미관계와 자주국방을 내세우는 새 정부의 입장을 잘 대변하고 있다.

국가간의 평등과 자주국방은 주권국가로서는 당연한 주장이다. 그러나 한국처럼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특수 상황에서는 안보정책은 신중하고 지혜로워야 한다. 우리 군사력만으로는 어느 주변 강대국과도 맞서기 어려운 냉엄한 현실을 인정한다면 말이 앞서기보다는 먼저 실력을 쌓아야 한다. 사실 주한미군을 공군력과 해군력 중심으로 바꾸려는 미 정부의 움직임은 70년대 말부터 있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강력한 반대와 불안한 한반도 정세 때문에 미 정부가 추진하지 못한 것이다. 지금 미국은 주한미군 조정 문제를 동북아지역의 새로운 전략수립이라는 큰 틀에서 검토하고 있지만 한국의 반미감정도 작용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런 점에서 국민은 새 정부가 국가이익보다는 대중적 인기에 영합하는 정책을 펴지 않을까 불안해 하고 있는 것이다.

주한미군 재조정 계획은 북한 정권의 오판 가능성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에는 한국에 대한 무력공격이 있을 때 미국의 자동개입 조항이 없다. 미국이 참전하려면 선전포고권을 가진 상원의 승인이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서울 북방에 배치된 미 2사단은 한반도 유사시 미국의 자동개입을 보장하는 ‘인계철선(tripwire)’ 구실을 해왔다. 북한군의 미군에 대한 공격은 바로 미국과의 전쟁이 되는 것이다. 북한군이 미 2사단을 공격하지 않고 서울로 진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미연합사가 만든 ‘작전계획 5027’에 의하면 북한군의 공격이 있을 경우 한국군과 미군은 서울 북방에서 미군 지원병력이 올 때까지 버티도록 되어 있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국정의 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노 당선자는 주한미군이 통일 후에도 한반도의 안정을 위해 필요하다고 강조하다가도 어떤 때는 앞으로 10년, 20년, 30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주한미군 철수에 대한 대비책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군 철수를 상정하는 것이다.

▼군사력 현실 냉엄하게 인정을▼

그러나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해서는 한미동맹 관계를 바탕으로 유럽의 헬싱키체제 같은 한반도 주변국들과의 안보협력체제가 현실적이다. 이것은 실효성에 한계가 있는 통일 후 한반도의 중립화 방안과는 달리 우리 안보를 이중으로 보장하는 ‘중층적(重層的) 평화체제’이다. 새 정부는 앞으로도 미국의 역할이 긴요하다는 전제 아래 미군 재배치 문제에 임함으로써 국민의 안보 불안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남시욱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