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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안병우/‘대통령 기록 관리’ 전담기구 두자

입력 | 2003-02-19 19:23:00


김대중 대통령의 임기 만료를 앞두고 대통령 기록의 인수인계가 일으킨 파장은 기록에 관한 현주소를 잘 보여 준 사건이었다. 청와대가 비밀로 분류한 대통령 기록의 목록을 정부기록보존소에 넘기지 않겠다던 당초의 태도를 바꾼 것은 천만다행이다. 아무리 비밀기록이라 해도 목록을 정부기록보존소에 제출하지 않는 것은 적법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청와대 기록을 아태재단으로 넘기려 했다는 항간의 풍문은 믿고 싶지 않다. 오히려 재임 기간의 모든 기록을 이관했을 때 나타날 파장에 대한 우려 때문에 잠시 주저한 것은 아닐까. 정부기록보존소가 처음으로 법령에 따라 대통령 기록을 인계받는 것이므로 그러한 우려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기록을 인계하지 않는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대통령 기록은 공공의 재산이고 국민 모두의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의구심과 염려는 대범하게, 그리고 현실적인 대안을 통해 떨쳐버려야 한다.

‘대범하게’란 설혹 단기적으로 기록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게 되더라도 크게 개의치 말라는 것이다. 그럼 점에서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제정한 이번 정부의 의지와 노력은 높이 평가된다. 당초 입법 취지대로 궁극적인 평가는 후대에 맡기는 대범한 자세가 필요하다.

‘현실적인 대안’을 몇 가지 측면에서 마련해야 한다. 먼저 대통령 기록의 공개에 관한 세부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 충족 차원에서 모든 기록은 공개되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대통령 기록이 당장 모두 공개되었을 때 미칠 파장은 예측하기 어렵다. 공개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비공개의 필요성을 조화시키는 지혜를 찾아야 한다.

대통령 기록의 공개를 요구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과 ‘국회에서의 증언 감정 등에 관한 법률’ 등이다. 정보공개법은 “다른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 법에 따라 공개하도록 규정했고 증언감정법에서는 “국가기관이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서류제출을 거부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청와대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이라고 하겠다.

실상 이는 충분히 예상된 일이다. 그럼에도 준비를 철저히 하지 못한 것은 담당 부서의 책임이다. 이제라도 관련 법률을 따로 만들거나 최소한 시행령이라도 보완해야 한다. 퇴임하는 대통령이 지정하는 기록은 일정 기간 공개하지 못하게 하는 외국의 사례도 원용할 수 있다. 대통령 기록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관련 제도도 고쳐야 한다. 기관장의 위계가 기관의 위상을 대변하는 관료사회에서 이사관이 장(長)으로 돼 있는 행정자치부 산하 정부기록보존소가 국가기록 전반을 관장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므로 정부기록보존소는 차관급 이상 독립기관으로 삼고, 그 책임자는 전문적 식견과 사명감을 갖춘 인사를 채용해야 한다.

아키비스트의 임무와 권한도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 평가와 공개의 결정은 최종적으로 아키비스트가 내리며, 그것은 사법심사의 대상으로도 삼지 않는 외국 제도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공공기록 가운데서도 대통령 기록은 재임시부터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을 개발하고 보존소 내에 전담 기구를 두어야 한다.

안병우 한신대 교수·국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