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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크엔드 포커스]찜질방이야? 테마파크야?

입력 | 2003-02-20 18:30:00

서울 청담동의 대형 찜질방 테마클럽하우스 내부. 가운데 자갈길은 옥돌로 지압을 할 수 있게 돼 있으며 사이 사이에 42인치 PDP TV가 설치돼 있다.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고대 로마가 남긴 가장 화려한 목욕탕인 카라칼라 목욕탕에는 미술관 도서관 분수 수영장 등이 갖춰져 있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인에게는 예술이 ‘벗은 채’ 즐길 수 있는 놀이였던 것일까.

2003년 한국의 목욕시설은 로마만큼은 아니지만 단순히 때 벗기는 곳을 넘어서서 복합 놀이공간으로 발전하고 있다. 어느 새인가 동네 목욕탕을 밀어내고 성업 중인 찜질방은 목욕문화의 ‘진화’를 주도하고 있다. 때 빼고 땀 내는 시설뿐만 아니라 PC방, 노래방, 호프(맥주집), 아이스크림가게, 마사지실, 미용실 등을 갖춘 대형 찜질방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는 것.

13일 오후 8시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A찜질방을 찾았다. 분양평수 2000평, 실 평수 1300평에 2개층에 걸친 거대한 테마파크 같은 내부. 200여명의 손님이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앉아있는데도 한가해 보일 만큼 실내는 넓었다. 오후 10시가 넘자 인근 사무실에서 늦게 퇴근하거나 간단히 술을 마시고 ‘2차’를 위해 들른 직장인들로 찜질방은 본격적으로 붐비기 시작했다. 서울 최대규모의 찜질방이라는 이곳에서 ‘놀이로서 한국의 목욕문화’를 들여다보았다.

●벗은 몸을 드러내는 리조트

찜질방 입구에는 벌거벗은 여성, 친구의 등을 뛰어넘는 아이의 동상이 놓여 있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시설과 어른을 위한 목욕시설이 모두 갖춰져 있다는 상징인 듯하다. 실내로 들어가는 복도에는 얼굴 대신 모니터를 뒤집어 쓴 반라의 남녀 동상이 고객을 맞는다. 마치 백남준의 비디오아트를 패러디한 듯한 이 모니터의 이미지는 찜질방의 첨단 인테리어를 드러내는 소품의 일부분이다.

찜질방 곳곳에는 플라스마디스플레이패널(PDP)이나 액정화면(LCD) TV 등이 설치돼 있다. 화장실 개인 칸마다 비디오테이프 크기의 모니터가 있어 ‘볼 일’을 볼 때도 시선을 고정시키게 한다. 옷을 갈아입을 때도, 머리를 말릴 때도 눈만 돌리면 18인치 LCD 모니터와 마주친다. 옷장도 나무 대신 철제로 만들어져 이같은 첨단 이미지를 강화했다. 지하 2층에는 바닥에 아예 42인치 PDP TV 5대를 깔아뒀으며 ‘불가마’ 안의 60인치 PDP TV 등 곳곳에 PDP TV가 내걸려 있다.

“몸을 즐겁게 하기에 앞서 눈이 즐거워야 한다는 게 인테리어의 포인트였다. 유럽, 미국 등지를 일일이 돌아다니며 동상을 구해왔고 리조트 같은 밝은 이미지를 주려고 노력했다.”

이곳 장상옥 대표이사의 말이다.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복도의 천장은 야외 산책을 나온 듯한 느낌이 들도록 푸른 하늘에 뭉게구름이 피어나는 이미지를 표현했다. 툭 트인 넓은 복도를 따라 은하수 모양으로 푸른 하늘이 표현돼 있다.

●즐기는 목욕으로

찜질방에 설치된 마사지 센터(왼쪽)와 안마의자가 놓여 있는 휴게실.
신석교기자 tjrry@donga.com

A찜질방의 입장료는 2만원. 다른 찜질방보다 배 이상 비싸다. 입장료를 내면 손목에 바코드 인식이 되는 밴드를 차게 된다. 찜찔방 내의 다른 유료시설을 이용할 경우 이 밴드로 결제한 뒤 나중에 정산한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목욕시설, 불가마, 200인치 대형 스크린이 설치된 영화관, 식물과 열매의 향기로 심신의 피로를 풀어준다는 아로마방, 피톤치드와 산소가 주입된다는 삼림욕방 등이다. 삼림욕방에서는 요일별로 낮 시간대에 요가나 재즈댄스를 배울 수도 있다.

9∼11명이 단체로 들어갈 수 있는 ‘예약방’은 여성전용시설이다. 직장동료 또는 친구들이 모여 수다를 떠는 일종의 ‘곗방’ 역할을 한다. 최소 5명 이상일 경우 이용할 수 있는 이 예약방에는 주말 밤을 새우며 이용하는 단체고객이 많다. 요청하면 이불도 빌려준다.

여성탕 옆에 마련된 휴게실에서 쑥찜을 하고 있던 김상희씨(25)는 “1년 장기 회원으로 가입했으며 피부숍, 샤워시설, 쑥찜, 마사지 등을 자주 이용한다. 한번 오면 보통 5∼6시간은 보내고 간다. 친구들과 함께 오면 밤새 수다 떨며 자고 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휴게실 한쪽에는 피부의 잔털을 떼어 내는 ‘실면도’나 뱃살을 빼주고 건강을 다져준다는 ‘항아리 부황’ 등의 서비스도 유료로 제공되고 있었다.

피부·스포츠·경락으로 나뉘어 운영되는 마사지실은 한 번 이용하는데 4만∼5만원이 든다. 미용실은 24시간 운영되며 한식이 제공되는 식당을 비롯해 죽집 스넥바 아이스크림집 등이 유료로 운영된다.

아이들을 위한 놀이공간으로 PC방, 디지털다기능디스크(DVD)방, 노래방 등이 있으며 네일숍에서는 손톱 발톱 손질을 해준다. 골프웨어 ‘셰르보’를 비롯, 페라가모 구치 샤넬 등의 제품을 백화점보다 약간 싸게 파는 편집매장 스타일의 명품숍도 있다.

막 찜질과 식사를 끝낸 뒤 음료코너에서 친구 3명과 이야기를 나누던 부동산 디벨로퍼 최인철씨(49)는 “압구정동에서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데 저녁 먹으러 이 찜질방에 왔다”며 “아내와 아이들이 외국에 나가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는데 인근 식당가에서는 고기밖에 먹을 게 없는 반면 여기서는 가정식 요리를 먹을 수 있는 데다 두세 시간 쉴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최씨 일행은 ‘2차 장소’를 논의한 뒤 곧 술을 마시러 찜질방을 빠져나갔다.

가족이 한번에 놀러온 경우 리조트에 온 것처럼 하루종일 이 공간에서 보내기도 한다.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던 안모양(11)은 “엄마 친구 4가족이 함께 오전부터 놀러왔으며 영화, DVD, PC게임 등을 하며 하루를 보냈다”며 “아빠는 퇴근한 뒤 합류했다”고 말했다.

이곳의 지배인은 모두 5명으로 맥도널드, 베니건스 등 서비스 업종 출신자들로 구성돼 있다. 총지배인인 황현철씨는 “호텔처럼 상황에 따라 응대하는 방법을 적은 서비스 매뉴얼을 작성해 직원들을 교육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례로 고객이 몰고 온 차는 밸릿파킹해 주며 나올 때도 20분 전에 알리면 정문에 차를 대 놓는 등 호텔식 서비스를 도입했다.

이처럼 위락시설 위주로 운영되다 보니 정작 불가마방 자체는 적어 찜질을 주 목적으로 찾은 사람들은 일부 불평을 하기도 했다.

●새로운 문화현상 찜질방 모임

A찜질방처럼 테마파크 같은 유형의 찜질방이 등장하면서 고객 부류도 다양해지고 있다. 중년 기혼여성들의 계모임이나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로 이용되던 찜질방은 이제 가족모임 또는 직장인의 회의 장소로까지 용도가 다양해지고 있다.

금융자동화기기업체인 노틸러스효성은 지난달 말 경기 용인시의 한 찜질방에서 남녀 신입사원 30명과 임원 6명의 상견례를 가졌다. 그동안 이 같은 상견례는 대개 맥주집 등에서 이뤄졌다. 정장과 넥타이 대신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 차림이다 보니 결혼생활과 인생의 신조 등에 대해 격의 없는 대화가 오갔다는 게 참가자들의 말이다.

서울 강남역 등 오피스빌딩이 밀집된 지역 부근에는 회의실을 마련해둔 찜질방도 많다. 아침에 일찍 찜질방에서 모여 미팅을 가진 뒤 사우나를 하고 회사로 함께 출근하는 회사원들을 위한 것.

인터넷을 통한 찜질방 동호회 활동도 활발하다. 포털사이트 다음커뮤니케이션에는 ‘찜질방’을 키워드로 한 모임이 280개 있으며 회원수 100명이 넘는 찜질방 동호회만도 8개 개설돼 있다. 이들 동호회원은 게시판이나 정기모임 등을 통해 ‘어떤 찜질방이 좋더라’거나 ‘소문만큼 좋지는 않다’는 의견을 나누고, 찜질방을 제대로 이용하기 위한 노하우 등을 주고받는다. 회원 1만7000명이 넘는 다음카페 ‘사조사(사우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회원인 채미희씨(25)는 “입소문을 통해 어느 찜질방이 좋다는 소문이 퍼지면 직접 찾아가 체험해 봐야 직성이 풀리는 찜질방 마니아들이 많다”고 말했다.

하임숙기자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