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치러지는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는 종하 스님(65·관음사 주지)과 법장 스님(62·수덕사 주지)의 양자대결로 펼쳐진다. 94년과 98년 선거 때 폭력사태를 빚은 끝에 어렵사리 총무원장을 선출했던 것에 비하면 이번 선거는 말 그대로 조용하게 치러지고 있다.
14일 두 후보는 중앙신도회 등이 주최한 ‘후보초청 정책토론회’를 가졌다. 뜨거운 토론이 펼쳐지진 않았지만 두 후보가 공약을 공식적으로 밝혀 교계 안팎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또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16일 두 후보의 참모들이 ‘인신 비방과 금품살포를 하지 말자’는 신사협정을 맺기도 했다.
하지만 본격적인 정책대결은 아니라는 분석이다. 두 후보 모두 보수적 인물로 꼽힌다. 선거 전 한창 떠돌던 진보적 ‘제3 후보’의 출마가 독자적 지지기반을 마련하지 못해 무위로 돌아가면서 차별성있는 정책대결 대신 세(勢) 대결이 예견됐던 것.
법장 스님은 ‘말사 주지 임명권을 교구본사로 옮기겠다’ ‘총무원에 비구니 담당 부서를 신설하겠다’ ‘1년 이내 조계종을 대폭 쇄신할 발전안을 내놓겠다’ 등 비교적 적극적인 공약을 내건 반면 종하 스님은 “종회의원 9선의 경험으로 조계종 총무원의 행정개혁을 이뤄내겠다”며 ‘경륜’을 내세웠다.
조계종의 한 관계자는 “보수 성향의 후보들간에 큰 차별성을 느낄 수 없다”며 “하지만 ‘조계종 선거=폭력’이라는 오명을 씻게 된 것이 큰 성과”라고 말했다.
이번 선거는 조직력과 경력에서 앞서는 종하 스님이 초반 유리하게 출발했다. 종하 스님은 조계종 내 최대 계파로 총무원 선거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범어문중 용성문도회의 후원을 받았기 때문.
하지만 ‘종정을 포함해 범어문중만 요직을 차지해선 안 된다’는 법장 스님측의 선거전략이 맞아떨어지면서 비범어문중의 결집을 유도해 이젠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 선거 관계자는 “종회의원 81명과 24개 교구본사의 대의원 10명씩 모두 321명의 선거인단 성향을 분석한 결과 고정표 성격의 250표 정도는 서로 5 대 5로 백중하게 표가 나오고 나머지 70표 정도의 행방이 당락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중의 결속력이나 주지의 힘이 약해졌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쪽 문중 사람이 반대편 선거캠프에 가서 일하는 경우도 심심찮게 보이고 본사 주지의 대의원 장악력도 예전 같지 않다는 것.
한 관계자는 “이번 선거가 선거문화 정착의 과도기인 것 같다”며 “차기 선거에선 진보와 보수의 대결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