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4년 만에 처음으로 도시근로자 가구의 가계지출이 줄어들었다. 소득도 99년 2·4분기(4∼6월)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을 보였다.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02년 연간 및 4·4분기 도시근로자 가구의 가계수지동향’에 따르면 2인 이상 도시근로자 가구의 지난해 4·4분기(10∼12월) 가구당 지출은 210만6000원으로 1년 전 같은 기간에 비해 0.5% 줄었다.
도시근로자 가구의 분기별 가계지출이 줄어든 것은 외환위기 직후였던 98년 4·4분기(-1.9%) 이후 처음이다.
물가가 오른 것을 반영한 실질 소비지출은 166만4000원으로 3.5%나 줄었다.
작년 4·4분기의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280만4000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 증가에 그쳤다. 이는 99년 2·4분기(0.4%) 이후 가장 낮은 증가율이다. 물가 상승을 고려한 실질소득은 259만8000원으로 0.2% 증가했다.
경제전문가들은 이처럼 심리 차원을 넘어 실제 통계에서 근로자가구의 가계소득과 지출이 줄어든 것에 대해 지난해 3·4분기 이후 내수경기가 가라앉고 가계 대출이 억제되면서 이미 예상됐던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조동철(曺東徹) 선임연구위원은 “수출이 늘긴 했으나 유가 상승과 반도체가격 하락 등으로 근로자들이 실제로 손에 쥘 수 있는 소득은 크게 늘지 못했다”며 “경제여건상 당분간 가계 소득과 지출 감소는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가계지출을 항목별로 보면 근로자들은 반드시 쓸 수밖에 없는 곳에만 돈을 쓰고 줄일 수 있는 부분에는 대부분 지갑을 닫았다.
TV, 컴퓨터, 캠코더 등 교양오락기구에 대한 지출이 23.5%나 감소한 것을 포함해 교양오락비가 10.8% 줄었다. 또 외식비가 1.9% 줄어든 것을 포함해 식료품비가 0.4% 감소했고 교통통신비도 5.1% 줄었다.
반면 난방용 유류와 가스사용량 증가로 광열수도비는 18.8% 늘었다. 월세(2.4%)와 주택설비 및 수선비(25.6%) 지출 증가로 주거비도 10.2% 증가했다.
또 건강보험료 고용보험료 등 사회보험료가 20.0% 증가했고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납부액도 8.7%나 늘어났다.
소득증가 둔화는 월급 등 가구주 근로소득 증가율(5.9%)이 낮아지고 퇴직금 등 비(非)경상소득(-19.2%)과 이전소득(-14.2%), 재산소득(-9.0%)이 크게 감소한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
한편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2002년 지니계수는 97년(0.283) 이후 가장 낮은 0.312로 조사돼 도시근로자 사이의 소득격차가 다소 줄었다고 통계청은 설명했다.
김광현기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