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내에 부실한 장기(臟器)를 마음대로 바꿀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장기 교환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나는 과학자가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기업에 효자상품을 제공하며 국가에 미래를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학은 공리주의에 바탕을 두어야지 철학을 논하고 있을 수만은 없다. 미사여구보다 국민을 먹여 살릴 과학이어야 한다.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기초과학의 토대를 공고히 하고 소외 분야가 없는지 살펴야 한다.
특히 실용화 단계에서 기술융합 형태를 추구해야 한다. 가뜩이나 원천기술도 허약하고 기반구축도 미흡한 터에 개별 약진은 ‘논문을 위한 연구’의 반복이 되기 십상이다. 선진국과 견주어 ‘우리 기술, 내 상품’을 창출하려면 다양한 학제적 공동연구가 핵심이다. 이런 움직임은 이화여대 생명과학연구팀의 융합연구조직과 포항공대의 바이오텍센터 체제의 준비에서 찾을 수 있다.
▼환자 고통 줄여줄 ‘장기 교환'▼
서울대도 의대 농생대 자연대 등 9개 단과대학이 연합해 범국가적 생명공학 공동연구원을 발족시켰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겠으나 매우 고무적인 움직임에 틀림없다.
우리는 이 같은 공동연구의 한 예를 인간 대신 동물의 장기를 이식하는 ‘이종(異種) 장기’ 연구에서 찾을 수 있다. 인간의 수명이 연장되고 각종 오염환경에 노출되면서 간 심장 신장 폐 등 장기는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장기이식은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장기 제공원이 턱없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사람의 장기를 타인에게서 얻는다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쉽지 않은 모양이다. 특히 유교 관습과 전통이 뿌리깊은 우리나라는 장기 제공자를 찾기가 더더욱 어렵다.
동종(同種)장기 공급은 사회 문화적 가치가 변한다 해도 획기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이종 장기의 이용기술 개발로 해결 방안을 찾고 있다. 인간의 장기와 생김새나 크기, 그 기능이 비슷한 동물로 돼지가 있다. 돼지는 오랫동안 인간과 어울려 살아왔고 무균 상태로 사육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에 치명적 전염병을 전파할 가능성이 적다. 그러나 돼지의 장기를 사람에게 이식하면 혈관이 막히는 초급성 면역 거부반응이 해결해야 할 문제다.
서울대 교수들로 구성된 이종 장기이식 연구팀이 최근 돼지 허파와 심장을 개에게 이식시켜 본 결과 허파는 3시간 정도, 심장은 5분 이내에 정지되었다. 이것은 돼지 장기의 표면에 알파갈이라는 유전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돼지의 세포에서 알파갈을 빼내고 인간의 면역유전자를 넣어주는 분자생물학적 기술 개발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 과정을 거친 세포로 복제돼지를 출산시키면 면역체계에서는 ‘인간화된 돼지’가 되는 셈이다. 이 돼지의 장기를 인간에게 이식하면 일시적 적응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러나 세포성 면역거부반응과 만성거부반응이 생겨 장기간 생존은 어려울 수 있다. 따라서 이 같은 제3, 제4의 면역거부현상을 극복해야 안정화된 이종 장기의 임상적용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매우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이다.
이런 문제를 모두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식외과 전문가와 함께 미생물 면역 병리 수의 축산 분자생물학 분야의 과학자들이 한 팀이 되어 전 과정을 일관체제로 임해야 한다. 30여명의 전문가그룹이 나서야 한다는 뜻이다. 현실적으로 이 같은 대규모 연구진의 자발적 참여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최근 국내에서는 몇 개 대학과 연구소의 전문가들이 연구모임을 구성해 이 거대 프로젝트에 도전하고 있다. 30, 40대 학자들이 주축이 된 이들의 열의는 대단하다. 그들의 목표는 수년 내에 돼지 장기로 고통받는 환자를 구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올해 상반기 개 실험, 하반기에 원숭이 실험을 각각 계획하고 있다.
▼국민 먹여살리는 과학 돼야▼
최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준비 중인 새 정부의 국정목표 가운데 ‘과학기술 중심사회 구축’이라는 항목이 들어 있다. 또 청와대에 과학기술보좌관(차관급)을 신설한다는 소식은 매우 고무적이고 기대해봄직한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역대 모든 정부가 과학기술에 중점을 두겠다고 외쳐왔다. 그러나 정권 출범 때부터 국정지표를 과학기술 중심으로 설정하고 전담 보좌조직과 태스크포스팀을 운영한 정부는 없었던 것 같다. 자원과 자본이 빈약해 기술과 두뇌로 세계 경쟁에서 이겨야 하는 우리 처지에서는 당연한 일이다.
부디 초지일관되게 과학기술 우선 정책이 유지되었으면 한다. 아울러 과학계의 한 구석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미래 과학사회를 그려보고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어 본다.
황우석 서울대 교수·수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