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죄인입니다. 부디 좋은 곳에 가시길 기도합니다.’
‘제발 그곳에서는 고통 없이 행복했으면… 너무나도 가슴이 아파요.’
21일 오후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현장인 중앙로역 지하 1층은 수많은 목숨을 앗아간 유독가스의 흔적이 여전히 매캐하게 남아있었다. 계단과 기둥 벽 등에는 검은 검댕이 먼지처럼 눌어붙어있다.
그러나 이곳을 찾은 시민들이 벽과 기둥에 하나둘씩 새겨넣은 추모의 글들이 서서히 ‘검은 멍울’을 씻어내고 있었다. 홀린 듯 이곳을 찾았다는 한 시민은 “손톱으로 긁어내도 슬픔을 지울 수가 없다”며 벽에 추모글을 새겨넣었다.
중앙로역 입구와 지하계단에는 시민들이 추모의 뜻을 담아 한송이씩 바친 국화꽃이 하얀 눈꽃처럼 쌓이고 있다. 한 시민은 “꽃을 바치는 것밖에 할 수 없어 죄송하다”고 했고, 시민 전경숙씨(43)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사고는 이번이 마지막이 되기를 빌고 또 빈다”며 애통해했다.
대구에는 지금 온통 추모의 물결이 일고 있다. ‘근조’라는 검은 리본은 관공서는 물론 일반기업에도 확산되고 있다.
추모에 그치지 않고 한달음에 달려가 사고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려는 시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실종자 가족과 유족의 대기소가 있는 대구시민회관 소강당에는 자원봉사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이날 현재 60여개 단체 700여명의 자원봉사자들이 음식을 나르며 유가족과 슬픔을 나누고 있다.
대구시의사회와 대구경북약사회는 가족 대기실 앞에 임시 진료소와 약국을 설치해 의료봉사를 펴고 있다.
서울 용산 미군기지에 근무하는 미군 봉사단체 USO도 현장을 찾아 유족을 위로했으며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은 새벽기도로 유족의 아픈 마음을 달래고 있다.
대구시내 봉사단체뿐 아니라 포항 안동 상주 등 경북도내 자치단체들도 네트워크를 구성해 자원봉사에 나서고 있다.
영정이 안치된 시민회관 소강당 합동분향소에는 20일부터 전국에서 조문행렬이 이어져 이날 현재 1만여명이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유족대표 김혜정(金惠貞·43·대구 동구 입석동)씨는 “이번 사고는 유족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의 슬픔”이라며 “국민이 슬픔을 함께 나눠 뭉클하지만 반짝 관심이 아니라 오래도록 기억해 다시는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학생 10여명이 실종 또는 숨진 지역대학가에서도 추모열기가 높아지고 있다. 근조 표시를 한 대학의 홈페이지에는 학생들의 추모글이 이어지고 있으며 유족을 위한 모금운동도 벌어지고 있다. 학생이 실종된 대구대와 경일대는 유족성금 2000만원을 사고대책본부에 전했다.
김달웅(金達雄) 경북대총장은 “대구가 상상할 수 없었던 큰 사고를 겪고 있지만 대구 경북민이 힘을 모으고 국민이 응원하면 빠른 시일 안에 이 슬픔을 충분히 이겨낼 것”이라며 “모두 뜻을 모아 슬픔을 이겨내고 일어서는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자”고 말했다.
23일 오전 10시 대구시내 모든 종교단체는 타종을 하고 대구시청은 사이렌을 울리며 희생자를 추모할 계획이다. 차량운전자들도 일제히 경적을 울리며 이들의 넋을 기리기로 했다. ‘대구여, 슬픔을 딛고 굳세게 일어나라.’
대구=특별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