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기정옹을 생각하며 동아마라톤을 뛰겠습니다.” 53년 보스턴마라톤 챔피언인 야마다 게이조씨(가운데)가 부인 후지코씨(오른쪽)와 함께 손옹의 아들 정인씨를 만나 옛일을 회고하고 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손기정선생이 없었다면 내 마라톤 인생도 없었을 겁니다.”
1953년 보스턴마라톤에서 2시간18분51초의 기록으로 우승했던 일본의 원로 육상인 야마다 게이조씨(76). 그는 고 손기정 옹과의 ‘마라톤 우정’을 되새기며 부인 후지코씨(68)와 함께 3월16일 열리는 동아 서울국제마라톤대회에 참가한다.
야마다씨는 초등학생때 손옹이 1936년 베를린올림픽마라톤에서 우승하는 장면을 보고 마라톤을 하기로 결심했다. 야마다씨는 이때부터 손옹을 존경하게 됐고 야마다씨가 53년 보스턴마라톤에서 우승한 이후 일본을 자주 왕래하는 손옹과 자연스럽게 만나며 우정을 쌓았다.
생전의 손옹은 일본에 들를 때면 가와사키시에 사는 야마다씨 집에 자주 들러 마라톤 이야기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야마다씨가 동아마라톤에 참가하기로 한 것도 손옹의 데뷔무대가 동아마라톤이기 때문. 손옹은 1932년 제2회동아마라톤에서 2위를 차지하며 마라톤인생을 시작했다.
손옹의 장남 정인(60)씨는 “선친은 기억력이 흐려진 상태에서도 야마다씨가 병문안을 오면 금세 얼굴을 알아보고 마라톤 이야기를 할 정도로 야마다씨를 각별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야마다 게이조씨(왼쪽)와 그의 부인이 10여년전 일본 자택에서 손기정옹(가운데)과 함께 기념촬영한 모습. 사진제공 야마다씨
야마다씨는 요즘 저녁 7시 반경 잠자리에 들고 새벽 2시쯤 일어나 달린다. 17년이나 달린 탓에 어둠 속에서도 익숙해진 다마가와(多摩川)변이 연습장. 이번 동아마라톤은 생애 287회째 풀코스 마라톤이다. 기록은 4시간 10분대로 부인 보다 2,3분 앞서는 정도. 부인 후지코 씨는 47세때 풀코스 마라톤을 시작해 이제는 연례행사처럼 하와이 호놀룰루 마라톤에 참가한다.지난해가 21회째.
“사실 53년 보스턴마라톤대회에서는 컨디션이 안 좋아 중간에서 적당히 그만 두려했습니다. 그러나 응원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 도무지 빠져나갈 곳이 없었습니다.하는 수 없이 ‘이럴 바에는 빨리 끝내자’고 냅다 달렸는데 앞에 아무도 없었습니다.”
마치 아름다운 꿈을 꾸는 소년 처럼 앳된 미소를 짓는 야마다씨. 그 곁에서 부인은 손기정 옹과 생전에 찍었던 사진이며 한국을 방문했을 때 기념물로 받은 도자기 등을 어루만지며 회상에 젖고 있었다.
도쿄=조헌주특파원 hansc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