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이 있기 1년 전에 있었던 통신사 황윤길(黃允吉)과 부사 김성일(金誠一)의 상반된 보고는 오늘의 눈으로 보아 한심하기 짝이 없다. 유성룡의 ‘징비록’은 일본을 얕잡아 본 낙관론의 대가가 얼마나 값비싼 것이었는가를 처참하게 보여준다. 정묘(丁卯)호란을 겪고 나서도 공허한 명분론과 외교적 실책으로 병자(丙子)호란을 자초하는 대목은 한심하다 못해 정나미가 떨어진다. 청나라 군사의 내습을 알리는 봉화가 올랐는 데도 도원수(都元帥) 김자점(金自點)은 왕에게 보고하지 않았다. 정찰에 나섰던 군관이 적의 접근을 알리자 경망한 행동이라며 처형하려다가 또 다른 군관의 보고로 중단시켰다. 삼전도(三田渡)에서의 치욕적인 항복은 너무나 당연한 인과론적 귀결이었다. 망국적인 위기불감증이었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한심스런 망국적 위기불감증▼
국토방위에 관한 한 여러 형태의 위기불감증은 조선조가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 “역사는 아무도 묻지 않는 것에 대답하는 귀머거리와 같다”고 톨스토이는 적고 있다. 역사에서 교훈을 찾는 일이 부질없다는 비유다. 그러나 인류는 역사에서 선례와 교훈을 찾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왔다. “프랑스혁명은 스스로를 다시 태어난 로마로 이해했다. 또 고대 로마를 기억하고 회상시켰다”고 벤야민은 ‘역사적 철학 테제’에 적고 있다. 쉽게 말해 로마의 공화정치를 선례로 참조하고 의지했다는 뜻이다. 러시아혁명의 지도자들이 프랑스혁명을 참조하면서 실천에 임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참조를 통한 현실 운영이 어떠한 순기능을 발휘했느냐 하는 것은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에도 참조를 통한 검토는 안 하는 것보다 유익하고 효과적일 것이다. 19, 20세기 후진 사회의 역사는 모방을 통해 선진세계를 따라잡으려는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면서도 우리의 역사를 거울삼아 현재와 미래를 지혜롭게 설계하려는 의지가 우리에게 있는지 의심스럽다. 아니 역사 공부를 제대로 하는지도 의심스럽다. 몽골과 연합해 두 차례나 일본 정벌을 시도한 것을 도외시하고 역사이래 우리는 남의 나라를 침범한 적이 없다고 말한다. 자의든 타의든 침범한 사실은 사실대로 인정하는 것이 성숙한 태도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흥미본위의 음모론적 역사극 이외에 우리 역사에 대해 얼마만큼 알고 있는지 궁금하다.
역사를 읽다보면 ‘과똑똑’이란 말이 떠오를 때가 많다. 뮌헨회담은 너무나 유명하지만 히틀러에게 당한 것은 영국 총리 체임벌린만이 아니다. 그 누구도 믿지 않고 병적으로 의심이 많았던 스탈린도 히틀러에게만은 예외였다. 영국의 제의를 물리치고 1939년 8월 독일과 불가침조약을 체결했었던 스탈린은 측근들의 연이은 경고에도 불구하고 히틀러의 조약 준수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1941년 6월 독일군이 공격해 왔을 때 소련군이 무력하게 무너진 것은 많은 병력을 극동지방으로 배치해 놓았기 때문이었다.
임진왜란 당시 황윤길은 일본의 침공 가능성에 대해 비관적인 견해를 보고했다. 뒷날의 사태 전개는 황윤길의 비관론이 현실적이었음을 보여 준다. 매사에 비관론으로 대처하는 것은 건강에도 좋지 않고 부정적 결과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비관론은 최악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에 반해 일방적 낙관론은 안전불감증이나 위기불감증으로 이어질 수 있다. 심리적 사회적 비용은 들지 모르나 비관적 이미지는 최소한 파국에 대한 안전판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대구참사도… 북한核도…▼
대구지하철의 참사가 외국에서도 톱뉴스로 상세히 보도되는 것을 보고 여러 가지로 착잡한 심정이다. 다리가 무너지고 백화점이 무너지고 할 때마다 안전불감증에 대한 경각심이 강조되었으나 크고 작은 참사가 끊이지 않는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있다. 북핵 문제를 둘러싼 우리의 ‘천하태평’에 관한 외신보도를 접하면 우리가 안전불감증에 더해 위기불감증에 걸린 것은 아닌가 두려워진다. 계속되는 위기 속에서 살아온 탓에 아예 내성(耐性)이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정말 이렇게 태평해도 좋은 것인가. “대담한 지휘관보다는 신중한 지휘관”이라는 대사가 그리스 비극에 보인다. 그것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좌우명이기도 했다.
유종호 연세대 특임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