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쓰는 표현 가운데 ‘억장이 무너진다’는 말이 있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 현장에서 왜 이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을까.
‘억장’은 억장지성(億丈之城)의 준말로 억장이나 되는 높은 성을 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표현은 공들여 해 놓은 일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다.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로 희생된 이들의 위패와 영정이 모셔진 대구시민회관 합동 분향소에 가보라. 이 표현이 얼마나 가슴 아프고 애절한 말인지를 실감한다.
영정 속의 인물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다. 그들이 참사 현장의 희생자라는 것이 믿기지 않는다. 그 사진 속에는 일터에 나가는 한 가정의 아버지도 있고, 아이를 키우는 젊은 엄마도 있으며, 대학 진학을 앞둔 나이 어린 딸도 있다. 사연은 다르지만 모두가 대구의 시민들이다.
▼영정속 얼굴 모두 환희 웃어▼
그리고 희생자들의 사연이 더 비통한 것은 그들이 모두 지하철을 이용하는 우리 이웃의 서민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이 꿈과 희망을 지키기 위해 매일처럼 타고 내리던 지하철. 그 지하철에서 그들은 그 꿈과 희망을 영문도 모른 채 화마(火魔)에 묻어야 했다. 세상에 이런 모순이 어디에 있는가.
그래서 희생자 가족들에게는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현이 백번 천번 맞다.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해야 했던 사람들의 표정은 마치 식물인간 같다. 살아 있지만 숨쉬지 않는 사람처럼 앉아 있던 넋 나간 유족들의 모습. 청천벽력 같은 소식 앞에서 얼마나 황망하고 가슴이 메었을까. 정말 억장이 하룻밤에도 수없이 무너지고 또 무너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참사를 겪을 때마다 정부와 관계기관의 안전불감증에 화가 치밀기도 하지만,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 모두가 공범이라는 점을 깨닫게 된다. 비록 이번 참사는 병력(病歷)을 가진 한 정신이상자의 소행이었지만 개개인의 소외와 불신에 대한 책임은 우리 사회와 가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대구지하철 방화 참사는 누구 한 사람만의 실수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잘못인지도 모른다. 이를테면 한 시대를 살아가는 동업(同業) 중생으로서의 공동 책임이다.
불교 경전인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에 보면 부처님이 해골더미에 절을 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왜 아무런 연고도 없는 초라한 무덤에 절을 하느냐”는 제자의 물음에 부처님은 “전생의 수많은 부모와 형제들”이라고 답한다. 이러한 연기론(緣起論)의 입장이 아니더라도 이번 참사의 희생자들은 결코 나와 무관한 남이 아니다. 얼굴 한번 스친 적은 없지만 모두가 우리 부모와 형제이며, 선한 눈빛을 가진 우리 동네의 친지들이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가 조등(弔燈)을 내걸고 상복을 입어야 한다.
지금은 어떠한 위로의 말도 유족들의 슬픔을 대신 해 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렇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시련이나 절망은 전체적인 흐름으로 볼 때 전부를 다 놓치는 것은 아니다. 현재를 돌아보고 내일을 준비하는 기회로 삼는다면 새로운 지혜와 힘이 생기리라 믿는다. 고난은 극복의 대상일 뿐 더 이상 좌절이나 체념이 아니라는 것을 이웃들이 나서서 보여주어야 할 때다.
▼유족의 고통-아픔 나눠가져야▼
슬픔과 통곡의 현장이 다시 꿈과 희망의 자리가 될 수 있도록 이번 참사의 고통과 아픔을 나누어 가지자. 그리고 실의와 충격에 잠 못 드는 유족들과 대구시민들에게 따뜻한 가슴으로 위로와 격려를 보내자. 마음의 메아리는 하늘까지 닿는 법이다. 아무리 인정이 메말랐어도 아직까지는 사람이 유일한 희망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증명해 주었으면 한다.
어려울 때 비로소 사람의 정을 안다고 했던가. 오늘도 분향소에는 애도의 발길이 이어지고 추모의 국화꽃이 산처럼 쌓이고 있다. 이제 대구는 더 이상 눈물과 한숨의 현장이 아니다. 전 국민이 동참하는 치유와 봉사의 현장이 되고 있다.
현진 해인사 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