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요? 우리 회사는 국세청에서 나와도 전혀 떨지 않습니다. 오히려 세법 해석을 놓고 국세청과 토론을 벌입니다. 접대비도 세밀하게 규정돼 있어 걸릴 것이 없지요.”
엘리베이터 회사 ‘오티스LG’의 관계자는 24일 “외자기업이 된 후 가장 달라진 것은 투명경영과 안전문화”라고 자신 있게 답했다. 1999년 12월 미국 오티스와 LG산전이 합작해 만든 이 회사는 80.1%의 지분을 갖고 있는 오티스가 대주주다.
GM대우차의 한 임원도 “제너럴모터스(GM)가 인수한 뒤 의사결정 시간이 그전에 비해 두 배는 걸린다”면서 “그래도 크로스체크(교차점검)를 하도 많이 해 실수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외국인 투자 기업들이 한국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떠올랐다. 외자 기업은 한국 전체 제조업 생산의 13%, 고용의 7.3%(2000년 기준)를 차지하며 그 비중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국내 기업들의 경영방식과 종업원들의 사고방식까지 바꾸고 있다.
▽종업원의 머릿속까지 바꾼다=외국 자본은 국내 기업을 인수했다고 당장 모든 것을 바꾸지는 않는다.
외국인 지분이 70%를 넘는 국민은행은 대주주의 하나인 ING가 이사, 사외이사를 각각 1명 파견했다. 그러나 국민은행의 한 임원은 “이들은 ING라는 말을 입에 담은 적이 없으며 이사의 한 사람으로서 일할 뿐”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대주주는 평소 경영에 간섭하지 않고 최고경영자를 존중한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주주총회나 이사회를 통해 경영진을 바꿔 버린다는 것이다.
따라서 경영 실적이나 투명성에 대한 압력은 말할 수 없이 높아졌다. 기업설명회(IR)에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하며 그 반응도 즉각적이고 구체적이며 수준이 매우 높아졌다.
경영방식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이는 외국인 자본들이 일일이 간섭했다기보다 기업이 생존 차원에서 도입한 사례가 많다. 다국적 기업들은 재무담당자(CFO)를 파견해 재무 쪽만 따로 관리하는 일도 많다. 오티스LG는 올해부터 급여체계를 바꿨다. 전에는 예비군중대장과 자금팀장이 같은 부장이라면 같은 기본급을 받았다. 2000년부터 기존 봉급체계에서 성과급을 조금씩 늘려온 이 회사는 올해부터는 일의 성격에 따라 급여를 정하도록 기본급 체계 자체를 바꾸었다.
안전에 관해서는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널 정도. 국내 회사들은 ‘최소한의 안전장치’면 되지만 외국 기업들은 ‘최대한의 안전’을 요구한다. 장병우(張炳宇) 오티스LG 사장은 안전점검 양식에 맞춰 매달 4시간 이상씩 직접 공장을 점검한다.
이 회사 김길수 과장은 “처음엔 매우 불편했지만 지금은 회사 브랜드가 되어 영업이나 수익구조에서 플러스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그는 “초기에는 임직원들이 거의 그대로여서 외자기업에 근무한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요즘은 나 자신이 예전과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외국자본의 명암=외환위기 이후 외국계 기업이 없었다면 고용이나 경제성장도 훨씬 줄었으리라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 선진 경영기법과 상품을 가진 외국 기업들이 직접 진출함으로써 한국시장은 더욱 경쟁이 치열해졌고 그만큼 한국 기업들의 수준도 높아졌다.
그러나 외국자본이 늘어남으로써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권순우(權純旴) 수석연구원은 “외국 자본들이 투자에 항상 성공하지는 못하는 것처럼 외국자본 유치가 항상 국가경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1960년대 중남미를 풍미했던 ‘종속이론’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국내 경제와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는 외국인 투자는 장기적으로 경제구조만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 한국의 외환위기는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급속히 외국인 투자를 받아들였다가 썰물처럼 빠져나간 데 한 원인이 있으며, 태국 말레이시아 등 다른 동남아 국가들의 위기도 비슷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 투자한 외국인 직접투자 잔액은 472억달러로 국내총생산(GDP) 대비 11.2%(2001년). 권 연구원은 “한국의 경제규모나 구조로 보아 외국인 투자는 더 늘어나야 할 것”이라면서 “그러나 장기적 파트너십을 유지하면서 한국경제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는 기업들을 선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