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에 미국 칼라일펀드의 아시아지역 대표가 됐던 김병주 회장(40)은 중학교 시절부터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는 자녀를 한국에서 교육시키는 것에 불만스러운 점은 없느냐고 묻자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어느 나라에서 무엇을 배우느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교육이면 충분합니다. 사고할 줄 알면 웬만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지요.”
중학교 때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조승연씨(22)는 최근 발간한 저서 ‘공부기술’에서 국내 교육환경의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한국의 부모들은 자녀의 성적에는 민감하지만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심지어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말하지 않는다. 교사마저 ‘커서 고생하기 싫으면 공부하라’는 막연한 말로 공부에 몰두하기를 강요한다.”
그는 한국에서는 공부에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도 미국에서 우등생이 된 비결, 줄리아드음대(야간)에 다닐 정도로 다양한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는 생활환경 등과 함께 하버드대 학장의 신문 기고를 소개했습니다.
“학생들이 주어진 방식대로만 공부하는 것에 습관이 돼 있어 학교의 틀을 벗어나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고 기업들이 불평한다. 학생들에게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치려고 많은 노력을 해왔음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무작정 열심히 공부하는 원칙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근에는 국내에서도 아이들의 사고력을 높이는 교재가 나올 정도로 ‘생각하는 힘’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는 다른 태도를 보입니다. 아이들에게 “어른이 말씀하실 때는 ‘토’를 달지 않아야 한다”고 가르치고 아무런 비판 없이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아이를 칭찬합니다. 아이의 판단이나 생각 따위에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국내 최고의 대학을 나와 국책은행에 다니는 40대 초반의 한 직장인은 이렇게 푸념하더군요.
“고등학교 동창회를 나가보니 공부 잘하던 녀석들은 하나같이 샐러리맨이 돼 언제 ‘잘릴까’ 전전긍긍하는 반면 학교 다닐 때 ‘딴 짓’만 하던 녀석들은 사장님이 돼 거들먹거리는데…. 속이 뒤집히더군요.”
물론 우등생은 성공할 기회를 더 많이 갖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 없이 공부를 잘 한 아이보다는 성적은 떨어지더라도 생각이 분명한 아이가 생존력은 훨씬 강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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