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왕복여행/앤 조나스 지음 이지현 옮김/30쪽 7500원 아이세움(5∼7세)
이 책은 하루하루 색채의 향연이 쏟아지는 동화책 시장에서 흑백의 밋밋함과 모던한 그래픽으로 오히려 주의를 끌 만한 책이다. 또한 책을 순서대로 보고 나서 아래 위를 뒤집어서 되돌아오면 전혀 다른 그림들로 되살아나도록 한 아이디어가 독특하다.
책을 열면 교외의 한적한 마을에서 대도시 중심가로 나아가는 여행길이 하나하나 펼쳐진다. 조그만 읍내와 밀밭, 산과 바다를 지나 마침내 도시에 닿아서는 영화도 보고 마천루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것으로 첫번째 여정이 끝난다.
여기서 책을 거꾸로 돌려 다시 앞으로 책장을 넘겨 보라! 도시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또 다른 여행길이 펼쳐진다. 앞에서 읽을 때 영화관이었던 곳은 이제 식당으로 되고, 마찬가지로 교각은 전신주로, 도로는 탐조등 불빛으로, 파도의 움직임은 새들의 군무로 바뀌는 식이다. 바로 볼 때와 거꾸로 볼 때 그림들이 이렇듯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게 되살아나는 것을 보면 신기한 느낌마저 든다. 그래서 20여년 전 뉴욕타임스가 주는 ‘최고의 어린이 도서’ 상을 받았나보다.
그러나 어딘가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편치 않다. 정말 내가 색깔에 중독이 되어서 이 흑백의 그림들이 차갑고 기계적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그보다는 바로 그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정교함 자체가 주는 그 어떤 작위성 때문이 아닐까 싶다. 즉 거꾸로 보기를 통해 똑같은 사물을 다른 각도에서 관찰하게 되고 시각적 상상력을 키워주려는 의도가 너무도 선연히 드러나 있고, 또 그 의도가 너무도 성공적으로 관철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과연 상상력과 창의성이란 것이 이러한 차갑고 정교한 자극들로 인해서 길러지는 것일까? 구름의 모습에서, 산의 바위에서, 하다 못해 벗어놓은 옷과 화장실 변기 등에서 사람이나 친숙한 동물과 사물의 형상을 보며 이야기를 만들어내곤 하는 아이들이 아닌가. 아이들에겐 이미 이렇게 사물을 다르게 관찰하는 능력이 애초에 잘 갖추어져 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상상력과 창의성을 길러주려면 이렇게 다르게 보기의 실례마저 식탁 앞에 차려 떠먹여 줄 것이 아니라 무엇보다 그냥 자유로운 시간, 혼자 가만히 공상에 빠져 들 수 있는 순백의 시간을 제공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군가가 내가 너무 비약이 심하다고 하면 할말이 없다. 우리 아이처럼 많은 아이들이 이 책을 앞에 놓고 요렇게도 보고 조렇게도 보면서 놀라움과 함께 재미를 느낀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제몫을 다했다고 말해도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주미사 동덕여대강의전임교수·불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