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겨울. 한창 성수기이던 미국의 스키장에서 일 주일 간격으로 두 건의 사망 사고가 일어났다. 유명한 정치인이었던 로버트 케네디의 아들과, 가수이자 상원의원으로 활동하던 소니 보노가 스킹 중 나무에 머리를 부딪혀 사망하였던 것이다.
두 사람의 유명 인사가 스키장에서, 그것도 똑같이 머리 손상으로 사망하자, 스키어의 헬멧 착용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그 주된 내용은 야구, 아이스하키, 자전거 등의 종목이 모두 헬멧을 착용하고 하는데, 스키어의 머리만 더 단단하냐는 것이었다.뉴저지주에서는 스키어의 헬멧 의무 착용 문제가 주 의회에 법안으로 상정되기도 했다.
그런데 때 맞추어 헬멧이 스키로 인한 머리 손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던 과학자들은 난감해 할 수 밖에 없었다. 헬멧을 쓴 스키어가 머리를 더 많이 다쳤다는 통계가 나왔기 때문. 어떻게 된 일일까?
우리 주변에는 ’상식’과 ’실제 상황’간에 차이가 나는 경우가 많은데, 안전 기구의 사용에서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한다. 그 이유를 ’false sense of security’라는 용어로 설명한다. ’안전 불감증’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 같다.
헬멧의 완충 효과에는 한계가 있어서, 시속 32km이하의 저속의 충격에만 유효하다. 하지만 스키 사망 사고는 대부분 시속 40km이상의 속도에서 벌어진다. 스키 타다가 죽었던 사람들은 대부분 헬멧을 썼어도 죽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문제는 헬멧 착용 이후, 마음 가짐에서 발생한다. 안전하다는 착각에 빠져 위험한 행동을 더 많이 하기 때문에, 오히려 사고의 빈도는 늘어나는 것이다. 마치 총알이 빗발치는 전쟁터에서 고개도 못 들던 병사가, 철모 하나 씌워주자 혼자 ’돌격 앞으로’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
헬멧은 안전 수칙을 지키겠다는 마음 가짐 하에 착용한다면 부상의 정도를 줄여줄 수 있는 훌륭한 기구이다. 하지만 헬멧이 마징가 제트처럼 몸을 날려 무모한 자신을 보호해주리라는 ’보디 가드’의 역할을 기대하고 착용한다면 더 위험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안전을 위해서는 ’하드 웨어(헬멧)’ 보다 ’소프트 웨어(마음 가짐)’가 훨씬 더 중요하며, 기구는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번 대구 지하철 참사도 같은 이유였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코리아 스포츠 메디슨 센터·코리아 정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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