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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이상의 날개'…‘社會’라는 벽… 추락하는 ‘理想’

입력 | 2003-02-25 17:58:00

인간의 내면 탐구보다는 냉정한 사회에 초점을 맞춘 연극 ‘이상의 날개’. 사진제공극단 쎄실


김해경이라는 남자가 미스코시백화점 옥상에서 추락사했다. 용의자로 지목된 사람은 그의 동거녀 심연심. 재판이 진행되면서 이 기묘한 ‘사실혼 부부’의 관계가 밝혀진다.

경제적으로도 남성으로서도 무능했던 김해경, 생계를 위해 몸을 팔았지만 김해경을 진정으로 사랑했던 심연심. 김해경이 죽던 날 백화점 옥상에는 심연심이 함께 있었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거친 세상에 그저 무기력하게 대응할 수밖에 없었던 이 남자는 고층건물 꼭대기에서 이렇게 외쳤고, 그리고 떨어졌다. 그것이 자살이든 타살이든.

이상(본명 김해경)의 대표작 ‘날개’를 원작으로 한 이 연극의 제목은 ‘날개’가 아니라 ‘이상의 날개’(정하연 각색)다. 연출가 채윤일은 1977년 초연 때부터 원작과 각색과 연출의 ‘경계’에 대한 논란을 일으켰던 이 작품을 25년만에 다시 무대에 올렸다.

“소설의 재현이 아니라 재창조에 목적이 있다”는 연출가 채윤일의 의도는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라고 외쳤던 소설의 주인공을 ‘무자비’하게 추락시키는 데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는 이상의 소설에 넘치는 ‘자의식’에 매료됐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세상에 대한 절망과 울분으로부터 비롯된 자의식을 가지고 한 가닥 빛을 찾아 헤메는 ‘이상’을 추락시키며 세상을 더 냉혹한 눈으로 바라본다.

이 연극에서는 1인칭 소설 ‘날개’에서 치열하게 추구됐던 내면 탐구는 소홀히 됐다. 대신 ‘몸 팔아 먹여 살려 준’ 한 여인에게 한 남자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돌리려는 재판정을 주무대로 삼음으로써 자기 책임을 회피하는 ‘사회’에 차가운 시선을 맞춘다.

범인으로 몰아세우는 ‘사회’에 겁먹어 오그라든 여인의 심장만큼이나 조그마한 몸으로 온 무대를 가득 채우는 최광희(심연심 역)의 열연은 집요하게 직무유기를 감행하는 ‘사회’의 비겁함을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연심에게 포커스가 많이 가다 보니까 여성연극으로 소문이 나서 여성 관객들이 많이 찾아요. 아쉬운 점도 없진 않지만 그 골치 아프다는 이상의 소설을 쉽게 푼 건 잘 한 것 같아요.”

연출가 채윤일은 올해 초 그의 유일한 재산인 24평 아파트를 담보로 빌린 1억5000만원으로 연극 인생 30년을 걸고 여덟 작품 연속 연출의 대장정을 시작했다.

3월11일 막을 올리는 ‘엘렉트라’를 비롯해 ‘무진기행’ ‘진땀흘리기’ ‘산씻김’ ‘까리귤라’ ‘영월행 일기’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을 연이어 무대에 올리지만, 첫 작품으로 1월초에 시작한 ‘이상의 날개’만은 1년 내내 끌고 가 볼 계획이다.

3월1일 7시30분 100회 공연을 돌파하며 4월27일까지 연장공연에 들어가는 것을 보면 일단 첫 고개는 넘어가는 셈이다. 매일 4∼5시간씩 두 차례에 걸쳐 강행되는 그의 ‘연습’은 오늘도 계속된다.

매일 오후 4시반 7시반(월 쉼). 대학로극장. 1만2000∼1만5000원. 02-764-6052

김형찬기자·철학박사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