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박준 음성언어팀장(왼쪽)이 컴퓨터 음성인식의 정확도를 테스트하고 있다.사진제공 한국전자통신연구원
국내 통신 및 전자기술의 메카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96년 세계 최초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 휴대전화 시스템을 상용화하는 데 성공해 매년 퀄컴에서 수백억원의 기술료를 받고 있을 정도로 기술력을 자랑하는 연구원이다.
이 연구원은 기술개발에만 그치지 않고 개발한 기술을 국내 중소기업에 값싸게 공급하는 ‘기술 공장’ 역할을 톡톡히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를 위해 1700여명에 이르는 두뇌집단은 현재 각 분야에 걸쳐 모두 251개에 이르는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시키고 있다. 이들 90% 이상이 석박사.
이 중 2001년부터 ‘표준형 한국어 음성 데이터베이스(DB)’ 구축작업과 음성정보처리기술을 개발 중인 음성정보연구센터를 25일 찾았다.
연구실에 들어서자마자 박준 음성언어팀장이 녹음된 모방송 뉴스를 틀기 시작했다. 컴퓨터가 얼마나 정확하게 음성을 인식했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한 것이다. 뉴스가 나오자 컴퓨터 모니터에는 뉴스 원고가 속속 뜨기 시작했다.
“안성천 주변 곳곳에서 침수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오늘 낮 12시쯤 경기 평택시 고도면 ‘서점전투기’가 무너지면서 38번 국도 4㎞가 물에 잠겼고 주변 농경지 30㏊가 침수됐습니다….”
2분30초짜리 방송뉴스를 기록하면서 컴퓨터가 오인한 단어는 불과 4개. 그러나 박 팀장은 만족스럽지 않은 듯 유민선 연구원에게 “잡음이 있으면 정확도가 떨어진다”며 잡음처리 보강을 지시했다. 모두 25명인 연구원들은 요즘 밤샘작업을 거듭하면서 시스템의 정확도를 높여가고 있다.
음성정보연구센터는 지난해 말 1차로 한국인 1000명이 말한 음성DB를 구축한 뒤 이를 업체당 500만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으로 민간업체에 공급했다. 음성DB는 지금까지 50개 업체가 구입할 정도로 ‘히트상품’으로 자리잡았다.
ETRI는 기술 구매자들을 대상으로 매달 한 두 차례 기술이전 설명회라고 이름 붙인 ‘기술 판촉쇼’를 개최하고 있다.
설명회가 열릴 때마다 10여건의 ‘기술’이 판매대상 기술로 올라오는데 민간연구소가 아닌 만큼 가격은 비교적 저렴하게 책정한다. 싼 기술은 2000만원대에도 구할 수 있지만 45억원에 팔린 고가 기술도 있을 정도로 다양한 가격대의 기술이 나와 있다.
이와 함께 지난해부터는 최근 개발한 기술뿐만 아니라 오래 전에 개발한 특허권도 국내 업체들이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시장에 내놓고 있다. 지난해에는 140개 특허를 임대해서 40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지난 한해 동안 ETRI가 올린 기술판매 수입은 퀄컴에서 받은 기술료를 제외하고도 총 121억원.
이진식 기술상용화전략실장은 “기술을 사갔던 기업이 사업에 성공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며 “해외에서도 기술을 사가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대전=공종식기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