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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광양 매실마을 "봄, 가지 끝에 피다"

입력 | 2003-02-26 18:19:00

팍팍한 겨우나무에 함박 웃음머근 매화 꽃 피어나면 가지끝에 걸려 앙탈부리던 겨울도 꽃망울 터지는 소리에 놀라 강 너머로 달아나 버린다. 지난해 3월 중순 섬진강변 매화마을 청매실농원(광양시 다압면)의 매화꽃 풍경. 동아일보 자료사진



삶이 배어든 국토지리를 산에서 산으로만 이어지는 ‘산줄기’(稜線)로 파악한 조선후기 실학자 여암 신경준(旅庵 申景濬). 혜안이 아닐 수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은 강가에 모여 살고 그 강은 산에서 발원하니 산줄기 양편의 강은 절대로 만날 수 없고 덕분에 사람도 산줄기에 의해 나뉘어 살게 되면서 서로 다른 문화와 풍습, 말과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니까.

이런 시각으로 여암이 우리 국토를 풀어헤쳐 저술한 지리서가 ‘산경표’(山經表)다. ‘백두대간’(白頭大幹)이란 멋진 말을 탄생시킨 역작이다. ‘1대간 1정간 13정맥’. 무수한 산도 산줄기로 정리하니 이렇듯 간단했다. 국토를 양분하는 기둥을 백두대간(백두산∼지리산)이라 하고 예서 가지친 열 넷을 1정간 13정맥으로 불렀는데 반도를 적신 큰 강 10 개가 모두 여기에 감싸 있으니 탁월한 분석이 아닐 수 없다.

그 중 남도(南道)의 정취를 배태한 산줄기는 호남정맥이다. 이 정맥은 남해의 광양만 앞 백운산에서 산줄기를 일으켜 조계산(순천) 제암산(장흥) 백양산(장성) 내장산(정읍) 무등산(광주) 마이산(진안)등 숱한 남도의 명산을 섭렵한 뒤 장안산(장수) 거쳐 영취산에 이르러 대간에 그 줄기를 댄다.

이 봄에 굳이 호남정맥을 들춰냄에는 이유가 있다. 경칩을 꼭 이레 앞둔 이 즈음 춘색(春色)의 일단이라도 뵈어 주는 곳이 흔치 않은 곳이 여기기 때문이다. 바로 최남단 백운산(해발 1218m). 섬진강 끼고 지리산과 그 아래 구례 하동을 마주한 산이다.

백운산발 춘색 제 1신은 섬진강변의 다압면(전남 광양시) 매화마을에서 온다. 고기비늘처럼 반짝이는 섬진강 수면의 반사된 햇볕 덕분에 산등성의 양지 녘 매실나무는 추위 속에서도 꽃을 피운다. 지난 일요일(23일) 찾은 매실명인 홍쌍리 여사의 청매실 농원. 섣부른 몇 그루가 하얀 꽃을 피웠을 뿐 나머지는 아직 고심 중.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의 변덕 극심한 봄을 벌써 알아챈 모양이다. 그러나 봄은 역시 봄. 움튼 눈에는 화개의 기운이 역력하다. 지난 해 개화는 3월 1일. 마을사람들은 조금 늦을 것으로 전망한다.

백운산 춘색 제 2신은 백운산에서 온다. 고로쇠 약수다. 허다한 산중의 고로쇠 물 가운데서도 유독 이곳 물만 ‘명품’대접을 받는 이유, 분명하다. 이 산 옥룡사(터만 남음)에서 35년 간(864∼898년) 수행하던 도선 국사가 가부좌를 풀고 일어서다가 무릎이 펴지지 않아 나뭇가지에 의지했다가 가지를 부러뜨렸는데 거기서 물이 떨어졌고 그 물을 받아먹고 난 후 신기하게 무릎관절이 풀렸다는 전설이 고장인 덕분이다. 그래서 붙은 이름이 골리수(骨利水)고 ‘고로쇠’라는 이름이 여기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백운산 고로쇠나무 숲에 가장 가까이 있는 논실 마을(옥룡면 추산리)을 찾았다. 나무는 계곡 주변의 서울대학교 연습림에 주로 있다. 나무 밑둥마다 수액 담는 비닐 백이 서너 개씩 놓여 있다. 숲에는 ‘고로쇠 약수 채취 체험로’로 있다. 누구든 산책하며 수액채취 과정을 볼 수 있다.

백운산 춘색 제3신은 옥룡사지의 동백 숲에서 온다. 도선 국사가 사찰 주변의 땅 기운을 돋우기 위해 심근 나무라는데 거대한 숲을 이룬다. 4월이 되면 떨기 채 떨어진 동백 꽃이 땅바닥을 붉게 뒤덮는 선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지금은 꽃봉오리가 터지기 일보직전.

광양=조성하기자 summer@donga.com

●식후경

◇매화가든의 고로쇠 약수

매실나무 심근 산기슭의 양지바른 곳. 흑염소 수십 마리가 게으름 피는 염소농장 옆에 아담한 주택 두 채가 있다. 백운산 고로쇠 약수 채취 숲에 오르는 도로변. 주인 정행자 씨가 플라스틱 물통(18리터)과 분청사기 사발, 고추장과 북어 한 마리를 상에 낸다. 불지핀 방바닥은 뜨끈뜨끈, 연신 들이키는 고로쇠 약수는 향긋 달콤. 온 식구가 둘러앉아 오징어 북어를 고추장 발라 씹으면서 이야기꽃을 피운다. 이렇게 밤새면 보통 2∼4명이 한 통을 마신다. 숯불 모듬 구이도 이 식당의 별미. 염소와 뼈 발린 닭 오리 살 주물럭 구이. 800g 한 접시(4인이 충분)에 4만5000원. 고로쇠 약수는 한 통에 5만원, 택배도 한다(5000원 추가). 061-762-6071, 2128

◇청매실 농원과 일품매우(一品梅牛)

청매실농원(한글도메인)은 매실명인 홍쌍리 여사가 대물림으로 일군 것. 산기슭을 하얗게 덮은 매화 꽃밭에서 새콤달콤 매실과즙도 맛 볼 수 있는 매화 명소. 올 축제는 3월 1∼31일 한달간. 다압면 일대에서 열리는 광양매화축제는 8∼23일. 061-772-4066

일품매우는 매실을 섞은 사료로 키운 한우 쇠고기만 내는 고급식당. 며느리 박현려씨가 순천시내(연향동)에 1호 점을 냈다. 최상급 매우 공급을 위해 광양 도축장까지 인수했을 정도. 매우는 육즙이 담백하고 육질이 부드러운 것이 특징. 매일 도축하는 매우 중에서도 최상급만 가져와 생고기 회와 숯불구이로 낸다고 했다. 매실된장과 고추장, 매실과즙 섞은 생고기소스, 매실차 등 매실 일색의 화려한 상차림 역시 특이하다. 금당지구 아파트단지의 금당파출소 부근.061-724-5455

●찾아가기

①대전·진주간 고속도로=장수IC∼19번 국도∼장수∼남원∼구례. 섬진강 양편으로 19번 국도(하동쪽) 혹은 861번 지방도(광양 다압면쪽) 이용∼다압면(매화마을)∼하동∼2번 국도∼광양.

②경부고속도로=천안·논산고속도로∼호남고속도로/익산IC∼17번 국도∼전주 역∼임실∼남원∼19번 국도∼구례∼순천∼2번 국도∼광양(시내)∼지방도∼옥룡면(사무소)∼동곡리(과양제철소휴양소 방향)∼매화 가든∼논실마을.

●패키지 투어 상품

승우여행사(www.swtour.co.kr) 02-720-8311 ①청매실농원&맛 기행(1박2일)=3월 4, 11, 14일 출발, 19만9000원. 우등고속버스(27인승)로 여행하면서 일품매우의 매실한우와 매화가든의 고로쇠 약수, 지리산 대통밥과 추어탕(남원 새집)을 맛본다. 섬진강 매화마을∼백운산 논실마을∼보성녹차밭∼율포해수녹차탕∼낙안읍성∼선암사. 새마을호 귀경. ②노고단 해맞이&청매실농원(무박2일)=3월 7, 8, 14, 15일 출발. 5만5000원. 노고단 트레킹∼섬진강 매화마을∼지리산온천 ③청매실농원(당일)=3월 8, 15일 출발. 매화축제 참가. 3만8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