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그럴 듯한 ‘바다도시’가 없다. 어쩌면 해양문화 자체가 거의 없다고 할 수 있다. 1000년 전 동양 3국의 제해권을 장악한 해상왕 장보고 이후로는 바다를 크게 이용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3면이 바다인 우리에게는 해양문화에 대한 막연한 갈증이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 우리나라에도 이탈리아의 베네치아를 모델로 해 새만금에 바다도시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큰 항구도시로 118개의 섬들이 400여개의 다리로 이어진 ‘물의 도시’다.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내해(內海)를 중심으로 1500년의 긴 세월 동안 서서히 만들어진 문화와 관광의 도시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서해쪽은 중국과 한국을 합해 약 9억명에 가까운 인구가 밀집된 지역이니 새만금을 지중해의 베네치아처럼 서해의 교역과 서비스, 관광의 중심지로 만들자는 주장이 그럴듯하게 들린다. 서해의 중심지 역할을 중국의 상하이가 독점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속에 우리 경제의 큰 활력소가 될지도 모른다는 청사진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새만금 바다도시’라는 이 원대한 계획의 실현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핑크빛 환상에만 빠질 일이 아닌 것이다. 국민에게 막연한 희망을 심어주기 전 실현 가능성과 예기치 못한 문제들을 심각하게 생각해 봐야 한다. 실제 많은 전문가들은 이 제안에 대해 회의적 견해를 보이고 있다.
바다에 도시를 건설하는 것은 심각한 환경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도시에서 나오는 오물들이 그대로 바다로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수상가옥들은 말할 것도 없고 베네치아조차 지난 수십 년 동안 생활하수로 인한 수질오염으로 골치를 썩고 있다.
무엇보다도 우리 서해안은 세계적으로 조차(潮差)가 큰 지역이다. 조차가 베네치아에서는 1m 미만이지만 새만금에서는 6∼7m나 된다. 밀물 때 물에 잠기지 않게 건물을 지으면 썰물 때는 다이빙대처럼 높은 탑이 되어 버릴 것이다. 또한 항만 입출항시 선박 조종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항로 유속이 초속 2∼3m보다 낮아야 하는데 새만금 방조제 개방구간은 4∼5m로 빠른 물살 때문에 배가 드나들기에 매우 위험하다.
도시로서의 안전성도 문제다. 새만금은 베네치아보다 물살이 4∼5배 빠르다. 수상가옥 사이로 바닷물이 세찬 강물처럼 흐른다는 뜻이다. 게다가 베네치아에서는 볼 수 없는 태풍이 거의 매년 찾아온다. 평상시에도 파도가 심한 날이면 파랑주의보가 내려지고 크고 작은 선박들은 발이 묶인다. 하물며 태풍이 찾아오면 배들은 고사하고 해상건물이 버티기조차 어려울 것이다. 첨단기술을 동원해 태풍에 버틸 수 있는 건물을 만든다 해도 목숨을 걸고 그곳에 머물고 싶은 이가 있을지 의문이다.
베네치아의 아름다운 경관을 떠올리며 새만금 바다도시의 환상에 잠기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환상을 벗어난 현실에서는 베네치아의 시궁창도 보아야 하고, 매서운 풍랑 속에 흉물처럼 버티고 서 있을 건물들도 그려 보아야 한다. 현실성이 떨어지는 주장에 이끌려 국론과 시간을 낭비할 필요가 있는지 함께 생각해 볼 일이다.
박승우 서울대 교수·생물자원공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