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치기 왕’ 김일씨가 27일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현대건설과 도로공사의 배구 슈퍼리그 여자부 결승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이날 김일씨는 고향후배인 현대건설 유화석 감독의 초청으로 경기장을 찾았다. 강병기기자
프로레슬링계의 전설적인 ‘박치기 왕’ 김일(71)씨가 27일 배구 슈퍼리그 결승전 코트에 나타났다.
김씨는 일본의 한국계 프로레슬링 챔피언 역도산 문하에서 레슬링을 익힌 뒤 미국에 건너가 1963 WWA세계태그챔피언과 1967년 WWA 제23대 세계헤비급 챔피언에 올랐던 한국프로레슬링의 신화적인 존재. 1960∼70년대 어려운 시절, 박치기 한 방으로 서양의 거구들을 바닥에 눕히며 전 국민을 열광케 했다. 정부는 94년 그에게 국민훈장 석류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그는 은퇴한 뒤 고혈압 관절염 등 지병을 얻어 10년 전부터 투병생활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서울 상계동 을지병원에 입원해있다. 평소 장거리 이동을 할 때는 휠체어에 의존해야 하는 상태. 하지만 이날은 비교적 건강한 모습으로 걸어서 나타났다.
그가 배구 코트를 찾은 것은 현대건설 유화석 감독의 초청에 응한 때문. 전남 고흥 출신으로 김씨와 동향인 유감독은 김씨를 대선배로서 깍듯이 모셔왔다. 유감독은 “수십년 전부터 그분의 열렬한 팬이었다. 은퇴하신 뒤 쓸쓸하게 병실을 지키는 고향선배께 활력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유감독은 이날 김씨가 병원을 출발해 경기장에 도착할 때까지 약 2시간동안 경기장 입구에서 기다린 뒤 직접 모시고 VIP석으로 올라갔다.
이날 여자부 현대건설과 도로공사의 결승 1차전 경기를 관람한 김씨는 “내가 직접 경기에 출전한 것 같다”며 마냥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경기를 좀 더 자세하게 보기 위해 몸을 이리 저리 움직이기도 했다. 김씨는 “친동생이 고등학교 시절 잠깐 배구를 해 평소 배구에 관심이 많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또 “유감독과는 20년 이상을 알고 지낸 사이이며 유감독은 내가 입원한 뒤에도 1년에 7,8차례 이상씩 자주 찾아온다”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한편 동행한 부인 이인순씨는 “남편은 틈만나면 한국프로레슬링 침체가 안타깝다고 말한다”며 “프로레슬링경기장에 배구 코트에 나온 정도의 관중만 찾더라도 얼마나 좋겠냐”고 말했다.
이원홍기자 blues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