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지하철 방화참사에서 보듯 대중교통의 생명은 안전에 있다. 특히 비행기의 경우 모든 관리의 초점은 안전에 맞춰진다. 9·11테러 이후 공항의 보안 규정은 한층 까다로워졌으며 미-이라크 전쟁에 대한 위기감과 함께 테러에 대한 공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에서도 지난해 11월 말 ‘항공 안전 및 보안에 관한 법률’이 발효됐다.
안전이 아무리 문제라도 열 몇 시간씩 승객들을 꽁꽁 통제할 수는 없는 일. 즉 △좁고 △밀폐된 공간에 △장시간 있어야 한다는 ‘고약한’ 조건에서, 안전과 안락을 동시에 달성해야 하는 기내 오퍼레이션은 ‘종합예술’이라 할 만하다.
1일 오전 10시반. 인천발 뉴욕행 대한항공 비행기에 올랐다. 승무원들은 여유 있는 웃음으로 승객을 맞이하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음식 등 서비스물품 탑재 확인 △안전용품 수량 확인 △안전용품 작동 확인 등을 하느라고 손발에 불이 나도록 분주했다. 휠체어 필요, 아기 동반, VIP 등 따로 챙겨야 할 승객 명단도 미리 살핀다. 사전 준비에 걸리는 시간은 30여분.
기내식과 관련, 1등석은 승객수가 적고 가열장비와 보관공간이 충분해 준비하기가 까다로운 식사도 서비스된다. 비빔밥을 낼 때도 1등석은 밥과 국을 별도로 데워 준비하지만 이코노미석은 밥만 데우고 국은 뜨거운 물을 붓는 즉석국을 사용한다. 꼬리곰탕 육개장 등 밥과 국을 동시에 가열해야 하는 음식은 이코노미석에 제공되지 않는다.
승객이 식사를 마치면 조종석에 식사를 서빙한다. 기장과 부기장은 반드시 서로 다른 음식을 먹는다. 만에 하나 재료에 이상이 있을 경우 탈이 나더라도 한 사람에 그쳐야 하기 때문이다. 조종석 서빙이 끝나면 승무원들은 부엌의 간이의자에서 후닥닥 식사를 한다. 9·11테러 이후 포크와 나이프는 모두 플라스틱 재질로 바뀌었다.
비행기의 온 벽면과 기둥은 모조리 수납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릴 경우를 대비해 모든 수납공간의 문은 이중 잠금장치가 돼 있다. 잠금장치를 닫고 풀고 하는 손놀림이 귀신같다.
비행시간이 9시간 이상인 장거리 노선에서는 승무원이 반드시 휴식시간을 갖도록 규정돼 있다. 기내 영화가 상영될 때 승무원 절반은 ‘벙커’라고 불리는 곳에서 2시간쯤 눈을 붙일 수 있다. 겉으로 봐서는 도저히 안에 계단이 나올 것 같지 않은 문으로 따라 들어가 보니, ‘안네의 일기’를 쓴 안네가 살았던 비밀의 방 같은 곳이 나온다. 간이침대 8개가 2층으로 놓여 있다. 침대 가운데 안전띠가 있다.
바로 앞에 앉은 승객이 거슬리지 않도록 화장실과 부엌 앞에는 커튼을 친다. 하지만 이착륙시에는 반드시 걷어야 한다. 비상사태를 대비해 통로를 확보해 둬야 하기 때문. 짐을 의자 밑에 두지 않고 발 옆에 두는 것도 안 된다. 평소에야 건너갈 수 있지만, 위급한 상황에서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거치적거리면 넘어지거나 당황하기 쉽다. 이착륙 때는 밖이 보이도록 창문 가리개도 열어야 한다. 비상 상황에서는 밖이 보이는 것과 안 보이는 것의 차이가 크다.
비행기에는 2대의 엔진발전기가 있다. 꼬리부분에는 보조발전기가 1개 있다. 이륙할 때는 순항 중일 때보다 엔진 출력이 더 필요하므로 조명을 어둡게 조절한다. 엔진발전기 2대와 보조발전기 1대, 총 3대 중 1개만 돌아가도 웬만한 기능은 작동이 된다. 3개 다 고장나면 배터리와 비상발전기가 있어 항법장비 등 비행에 필수적인 부분에만 전원이 공급된다.
응급환자가 생기면 승객 중 의사나 간호사가 도움을 주는 일이 많다. 심각한 경우 환자를 병원에 보내기 위해 회항하기도 한다. 결정은 기장이 내린다. 회항이나 비상착륙을 할 때는 연료를 버린다. 날씨, 기종 등에 따라 이륙과 착륙할 때 중량 규정이 있기 때문. 또 착륙시 폭발 위험도 고려해야 한다.
출입문 10개에는 1, 2개씩 승무원용 의자가 있다. 승무원들도 이착륙 때는 이곳에 앉아 안전띠를 매야 한다. 위치가 출입문 앞인 이유는 비상시에 승무원들이 재빨리 문을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뉴욕행 대한항공 기내=김승진기자 sarafi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