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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주택시장에도 '홈그라운드' 있다

입력 | 2003-03-04 18:31:00


《스포츠 경기에는 ‘홈그라운드 이점’이라는 게 있다. 근거지가 있는 지역에서 경기할 때는 다른 곳보다 이길 확률이 높아지는 것을 말한다. 주택시장에도 이처럼 홈그라운드가 있다. 다른 지역에서보다 힘들이지 않아도 분양률을 높일 수 있는 곳이다. 이런 상황이 뚜렷해지면서 최근 들어서는 지역별로 일부 건설회사가 과점(寡占)하는 양상을 보이기까지 한다.》

▽지역별 강세 브랜드=부산에서 롯데 캐슬 브랜드는 최고급으로 인식돼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내집마련정보사’가 최근 6개월간 부산에서 분양된 3000가구 이상 대단지 아파트의 분양권 시세를 조사한 결과 롯데건설의 ‘롯데 캐슬골드 2단지’ 81평형이 1위를 차지했다. 또 2, 3위도 모두 롯데건설 아파트가 차지했다. 이 같은 인기에 힘입어 롯데건설이 91년 이후 최근까지 부산에서 공급한 아파트는 모두 15개 단지 1만5266가구에 이른다. 롯데는 올해에도 3곳에서 2740가구를 분양할 예정이다. LG건설도 부산에 가면 기(氣)가 산다. 1990년 이후 올 4월까지 공급량이 1만8607가구에 이른다. 특히 남구 용호동에서 분양한 ‘LG 메트로시티’는 7374가구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경기 안산시는 대우건설의 텃밭으로 여겨진다. 99년 3월 ‘대우드림월드’ 1차 1008가구를 분양해 ‘대박’을 터뜨린 이후 벌어진 현상. 대우는 이후 안산 일대에서 6차례에 걸쳐 모두 6096가구를 분양했다. 이는 같은 기간 안산에서 분양된 아파트 1만5394가구의 40%에 해당한다. 대우는 올해도 1400가구를 추가 분양한다.

이 밖에도 △대전은 계룡건설(대표 브랜드 ‘계룡 리슈빌’) △광주는 금호건설(‘금호 베스트빌’) △제주는 대림산업(‘대림 e-편한 세상’) △충북 청주와 강원 춘천은 현대산업개발(‘현대 I'PARK’) △경남 김해는 대우건설(‘대우 드림월드’)이 각각 홈그라운드로 여긴다.

▽왜 이런 일이 생기나=아파트가 ‘소품종 대량생산’ 제품이기에 이런 일이 생긴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성식 LG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를 브랜드에 따라 지역을 과점하는 대표적인 상품인 소주에 비교해 설명한다.

“소주의 경우 ‘참이슬’과 ‘산(山)’은 수도권, ‘시원(C1)’은 부산, ‘한라산’은 제주라는 식으로 10개 브랜드가 지역을 나눠서 거의 독점하고 있습니다. 이는 품목이 다양하지 않고 대량생산되는 데다 ‘골수 팬’이 있는 데서 생기는 현상입니다.”

또 시장에 외국상품의 진입이 없이 국내 회사끼리 경쟁하는 것도 소주와 아파트 시장이 닮은꼴로 지역별 과점을 형성하게 된 원인으로 꼽았다.

‘선(先)분양’ 제도가 아파트 시장의 과점 양상을 만드는 요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주택시장에서 고객은 완성품을 보기 전에 계약을 하고 값을 치른다. 따라서 소비자로서는 평소 친근하거나 재무안정성이 높은 건설회사를 고를 수밖에 없다는 것.

박형국 롯데건설 부산지사장은 “부산에는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 롯데 자이언츠 야구단의 홈구장 등이 있어 롯데 브랜드에 대한 부산시민의 선호도가 높은 편”이라고 귀띔했다.

건설산업의 특성상 ‘인적 네트워크’가 중시되는 점도 건설회사가 지역별 과점을 누리는 요인이다. 특정지역에 연고를 두고 활동하면 △시행사와의 관계 △인허가를 위한 관공서 네트워크 △협력업체와의 유대가 좋아지기 때문.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의 김현아 책임연구위원은 “이런 이유 때문에 서울의 건설회사가 지방에 진출할 때 현지 업체를 끼는 게 관행”이라고 말했다.

▽흔들리는 과점시장=하지만 주택시장의 과점체제가 오래 계속되지는 않을 전망이다.

우선 ‘탈(脫) 수도권’을 선언하는 건설회사가 늘었다. 수도권의 ‘땅 부족’이 가장 큰 이유다. 또 각종 투기억제대책과 건축규제가 수도권에 집중된 것도 원인이다.지난달 ‘부산 상륙’을 선언한 월드건설이 대표적이다. 부산에서는 처음으로 ‘월드 메르디앙’이라는 브랜드로 분양을 했다.

새 정부가 도입을 검토 중인 ‘후(後)분양’ 제도도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후분양 제도가 도입되면 상품의 완성도에 따라 판매량이 결정된다. 브랜드만 보고 사는 일이 줄고 그만큼 중소 건설회사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차지완기자 ch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