겉보기에는 평범한 사무실에 불과한 SAP 독일 본사에서 세계 최고의 두뇌들이 정보기술(IT)업계 메가트렌드를 이끄는 솔루션 개발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제공 SAP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자동차로 북쪽을 향해 30분 정도 달리다 보면 발도로프라는 작은 도시가 나온다. ‘SAP 도시’라고도 불리는 이곳은 세계 최대의 기업 자원관리(ERP) 소프트웨어 업체인 SAP 본사가 있는 곳. SAP는 지난해 매출액 74억1300만유로(약 9조6000억원), 영업이익 16억2600만유로(약 2조1000억원)로 영업이익률이 22%에 이를 정도로 실적 좋은 알짜 회사. 그렇지만 지난달 이곳을 방문했을 때 눈에 띈 것은 세계 정보기술(IT)업계의 ‘혁명’을 이끄는 ‘유럽 최대의 소프트웨어 회사’라는 명성과 걸맞지 않게 ‘평범한 사무실’만 빼곡하게 들어차 있는 평범한 건물이 전부였다.》
▽꿈의 솔루션이 다가온다〓“이제 웹(web)상의 모든 서비스와 응용프로그램이 통합되는 혁명적인 변화가 시작된다. SAP는 그 같은 변화의 최전방에 서 있다.”
로리 켈리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사장은 기자를 만나자 이렇게 SAP를 소개했다. 켈리 부사장의 이 같은 ‘호언’의 배경은 SAP가 최근 선보인 ‘넷 위버(Net Weaver)’ 기술 때문. 최근 차세대 웹 기반 솔루션으로 주목받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닷넷’ 및 IBM의 ‘웹 스피어’와 공조관계에 있는 이 기술은 앞으로 웹 기반에서 작동하는 모든 솔루션이 통합돼 운영될 수 있도록 하는 핵심 기술이다.
켈리 부사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소프트웨어 인력 수백명이 2년 동안 꼬박 매달려 개발한 제품”이라며 “이제 IT업계의 메가트렌드는 SAP가 주도한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
기업들이 IT투자를 할 때마다 기존의 솔루션을 모두 폐기해야 하는 중복투자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SAP가 선보였던 ‘xApps’ 제품도 SAP가 아니면 개발하기가 어렵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실제로 SAP는 이 같은 첨단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매년 매출액의 17%를 연구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IT 거인들의 ‘혈전(血戰)’〓과거 SAP의 주요한 경쟁자는 고객관계관리(CRM)의 절대강자였던 시벨을 포함해 오라클, 피플소프트 등이었다. 그러나 최근 세계 최대 소프트웨어업체인 MS가 이 분야에 뛰어들면서 예측을 불허하는 경쟁이 도처에서 벌어지고 있다.
특히 장기간의 경기 침체로 대기업들의 IT투자가 대폭 축소되면서 중소기업용 솔루션 시장은 ‘혈전’이라고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주요 업체간의 경쟁이 치열하다. SAP가 지난해 3월 이스라엘 회사인 탑매니지를 인수하자, MS는 즉각 7월에 덴마크 회사인 나비전을 1억4800만유로(약 1916억원)를 주고 매입하면서 중소기업용 솔루션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 대표적인 예. 이에 질세라 오라클도 최근 유럽에서 신제품을 발표하면서 3사끼리의 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거세질 전망이다.
그러나 기업용 솔루션 시장에서 SAP의 독보적 위치는 여전히 흔들리지 않고 있다.
미국 포천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의 86%가 SAP제품을 쓰고 있으며, 국내에서도 삼성전자 SK 등 주요 대기업들이 SAP 고객이다. 심지어 미국의 육군 해군과 연방국세청도 파트너로 독일 회사인 SAP를 택할 정도로 SAP의 경쟁력은 뛰어나다.
▽SAP는 ‘두뇌공장〓서글서글한 인상의 글로벌커뮤니케이션팀 랄프 니치는 SAP를 ‘두뇌공장’이라고 소개했다. SAP는 자동차나 TV를 생산하는 거대한 공장 대신 뛰어난 능력을 갖춘 ‘브레인’이 컴퓨터 앞에서 최신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는 평범한 사무실 자체가 ‘생산공장(Factory)’이라는 것.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자랑하는 SAP 제품을 만드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SAP 직원들이 가장 많이 모인다는 점심시간에 SAP 구내식당을 찾았다. 2만8000여명의 전 직원이 하나 같이 석·박사 출신의 고학력을 자랑하는 SAP 직원들은 대부분 20, 30대였고, 인도인 등 동양인도 눈에 많이 띄었다.
기업의 경쟁력이 ‘두뇌’에 달려 있기 때문에 채용 기준이 철저히 능력 위주일 수밖에 없어 인력 구성도 글로벌하다는 게 SAP의 설명. 실제로 지난해 채용한 본사 신규 인력의 30%는 독일 밖에서 데려왔다.
또 항공 자동차 화학 금융 등 각 분야에 걸쳐 기업용 소프트웨어를 생산하고 있는 SAP에는 관련 업종별로 최고의 전문가들이 포진해 있는 것도 강점. 은행솔루션 마케팅 담당인 에레미 아스프레이는 “최근 SAP가 마케팅을 집중하고 있는 은행솔루션 개발에는 전직 은행원 250여명이 참여했다”며 “웬만한 은행보다 전문성이 더 뛰어나다”고 밝혔다.
▽SAP의 경쟁력은 철저한 고객만족〓지난해 6월 어느 금요일 오후 3시. 아일랜드 더블린에 자리잡고 있는 ‘SAP 글로벌액티브 서포트팀’에는 프랑스의 자동차 부품공급업체로부터 “SAP의 공급망관리 솔루션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긴급 메시지가 도착했다. 월요일 근무가 시작되기 전까지는 꼭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말과 함께.
이후 ‘더블린의 글로벌액티브 서포트팀→발도로프 본사→미국 필라델피아 전문가팀→싱가포르 지사→온라인을 통한 관련 전문가 긴급회의→프랑스 고객회사 통보’ 등의 과정을 거쳐 문제가 최종 해결된 것은 토요일 오전 3시. 단 1분도 쉬지 않고 최고의 전문가들이 집중적으로 매달린 끝에 12시간 만에 긴급사태를 해결한 것이다.
통상 글로벌 액티브 서포트팀에는 세계 각국의 고객들로부터 매년 80만여건의 도움을 요청하는 메시지가 접수된다.
켈리 부사장은 “전 세계에 배치돼 있는 최고의 전문인력으로 24시간 응급서비스 체제를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고객들은 SAP라고 하면 일단 믿는다”고 경쟁력의 비결을 설명했다.
발도로프(독일)〓공종식기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