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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그게 이렇군요]민주 '北송금 특검' 갈팡질팡

입력 | 2003-03-04 18:54:00


《민주당이 대북 비밀송금 사건 특별검사법 문제를 둘러싸고 ‘대통령 거부권 행사’와 ‘재협상을 통한 제한적 특검 수용’ 사이에서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공론(空論)을 거듭하고 있다. 노무현(盧武鉉) 대통령까지 나서서 여야 지도부와의 회동을 통해 타협안을 이끌어 내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민주당 내 각 계파와 의원들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려 좀처럼 해법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계파간 신경전▼

정균환(鄭均桓) 원내총무는 4일 불교방송에서 “특검법은 내용과 절차에 오류가 있으므로 대통령이 헌법상 주어진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노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를 거듭 압박했다.

정 총무의 이 발언에는 김대중(金大中) 전 대통령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끼고 있는 당내 동교동계 및 구주류의 정서가 깔려 있다. 동교동계 등은 특검이 ‘남북관계를 파탄시키고 DJ와 노 대통령을 이간시키려는 정략의 산물’로 규정하고 있다.

청와대측이 제기하고 있는 특검법 재협상론이 당내 다수에 의해 수용되려면 이처럼 대놓고 거부권을 요구하는 동교동계를 어떻게 설득하느냐 하는 것이 일차적 관건이다.

민주당이 특검법 재협상 문제를 놓고 연일 결론없는 토론만 거듭하고 있는 것도 특검 수용을 전제로 하는 재협상 자체에 거부감을 보이는 의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반면 당내 신주류는 현실적으로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대통령에게 부담인만큼 특검을 수용하되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내용을 ‘순화’시키도록 야당과 재협상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대철(鄭大哲) 대표와 김원기(金元基) 고문 등이 이런 입장이다. 한화갑(韓和甲) 전 대표도 동교동계이지만 ‘특검법 재협상론’에 가깝다. 한 전 대표는 강운태(姜雲太) 의원이 최근 의원간담회에서 ‘수사는 특검이 하되 기소권은 검찰에 넘기는’ 특검법 수정안을 제안한데 대해 “괜찮은 방식이다”는 반응을 보였다. ‘DJ 보호’와 ‘특검 수용’이라는 두 가지 현실을 절충하는 선에서 재협상을 시도하자는 얘기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현재 국회를 통과한 특검법이 여권의 입장을 반영해 당초 안을 수정한 만큼 큰 틀에서는 더 수정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에서는 현재의 특검법이 문희상(文喜相) 대통령비서실장과 유인태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의 당사 방문(지난달 24일) 당시 이들과 은밀히 합의를 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물론 청와대측은 막후 합의설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 핵심부에서는 “어떻든 특검법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특검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가 강한 것도 사실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당내 신주류의 특검법 재협상 논의는 실질적인 수정보다는 거부권 행사에 따른 야당과의 정면 충돌을 피하고 DJ와 구주류도 달래기 위한 ‘성의 표시’의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 대두된다.

▼쇄신파 속내는▼

지난달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대북 송금 특검 법안이 통과된 뒤 “노 대통령은 거부권을 행사해야 한다”는 내용의 개별 또는 공동성명을 낸 의원 가운데는 동교동계보다 개혁 소장파 의원들이 오히려 더 많다.

성명을 낸 의원은 김상현(金相賢) 김근태(金槿泰) 김영환(金榮煥) 장성원(張誠源) 김경천(金敬天) 김성호(金成鎬) 박인상(朴仁相) 송영길(宋永吉) 심재권(沈載權) 이창복(李昌馥) 이호웅(李浩雄) 전갑길(全甲吉) 정범구(鄭範九) 의원 등 모두 13명.

특히 김성호 정범구 의원은 지난해 ‘1·29’ 개각에서 자신들의 인적 쇄신 요구로 청와대에서 물러났던 박지원(朴智元)씨가 대통령정책특보로 재기용되자 “의원직을 명퇴하고 싶은 심정”이라며 DJ를 강력 비판했던 인물이다. 이 때문에 이들이 최근 ‘DJ 지킴이’로 나선 것을 두고 당내에서조차 의아해하는 분위기다.

이들의 ‘변신’은 1년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서 호남 민심의 영향력을 의식한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두 의원 지역구의 호남 출신 사이에서는 “사사건건 DJ를 반대해온 사람에 대해서는 다음 총선에서 꼭 손을 봐야 한다”는 감정적 주장도 없지 않다는 전언이다.

동교동계 박양수(朴洋洙) 의원은 “지역구 여론을 들어보면 두 의원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이라며 “수도권 대부분의 호남 출신들도 DJ의 햇볕정책을 겨냥한 특검에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변인 논평 따로따로▼

대북 송금 특검을 둘러싼 민주당의 복잡미묘한 기류는 대변인실 논평에도 그대로 투영되고 있다.

김재두(金在斗) 부대변인은 3일 “헌법에 보장된 입법권 견제장치인 대통령의 거부권만이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횡포와 이로 인한 악법의 탄생을 막는 길”이라고 말했다.

김 부대변은 특히 역대 정권과 미국 대통령의 거부권 사례를 담은 참고자료를 배포하는 등 연일 ‘거부권 행사’를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반면 민영삼(閔泳三) 부대변인은 2일 한나라당에 ‘상생(相生)의 정치’를 촉구하면서도 거부권에 대해선 “대통령이 국민과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해 판단할 일”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김 부대변인은 당내 구주류, 민 부대변인은 신주류측 입장을 대변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당내의 분석이다.

색깔이 다른 부대변인들의 논평이 나올 때마다 당 관계자들은 “어느 게 당론이냐”며 고개를 갸웃거리곤 한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