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경제의 몇 안 되는 활력소인 부동산시장에 대한 우려의 소리가 많이 들린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경제잡지들은 ‘미국 부동산시장 언제까지 갈까’라는 특집기사를 다뤘다. 머지않아 위축된다는 기사가 대부분이었다. 경제 전반이 고통을 받고 있는 가운데 부동산시장은 꺼질 듯, 꺼질 듯하면서도 활황을 지키고 있는 것을 불안하게 보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4일(현지시간)에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부동산시장에 관해 본격 언급했다. 그는 위성을 통해 미국의 지역은행가협회 회원들에게 연설하면서 “올해는 부동산 경기가 작년만 못해 민간소비 지출을 떨어뜨리는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작년 주택자금 대출시장은 기록적이었다’는 그의 지적대로 미국에서 지난해 고용이 증가한 부문은 부동산중개업과 주택자금대출업 등 일부에 그쳤다. FRB의 계산으로는 작년 집값이 껑충 뛴 덕분에 ‘모기지(장기저리의 주택자금 융자)’ 상환액이 1조7500억달러나 됐다. 이는 작년 미국 국내총생산(GDP)의 16.8%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에 증시 호황이 가구 소득을 17조달러가량 높였듯이 액수는 적지만 부동산도 그런 효과를 낳고 있다.
FRB는 지난해 부동산값 폭등으로 민간부문에 풀린 돈이 2000억달러에 이른다고 계산하고 있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10년간 7000억달러를 투입해 경기부양에 나서겠다는 경기대책을 자랑하는 것에 비춰보면 작년에 부동산에서 풀린 돈이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이렇게 풀린 돈의 절반 정도는 소비지출에 쓰였고 700억달러는 고금리의 신용카드 빚을 포함해 대출상환에 쓰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문제는 ‘부동산값이 계속 올라 거기서 생긴 돈으로 소비도 늘리고 다른 빚도 갚는’ 과정이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 그린스펀 의장은 “1990년대에도 그랬듯이 집 값이 하락할 수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그는 “부동산시장에는 수년 전 증시에서와 같은 거품은 없다”고 말했지만 최근 미국 경제의 뒤를 받쳐온 민간소비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는 감추지 않고 있다.
이라크 전쟁 발발 가능성이라는 먹구름이 잔뜩 낀 뉴욕증시는 3, 4일 연속 내림세였다. TV는 전쟁특집에 버금가는 보도를 하고 있고 월가는 중동소식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