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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지주회사"

입력 | 2003-03-05 19:30:00


LG그룹이 이달 초 34개 계열사를 자회사로 하는 통합지주회사 ㈜LG를 출범시키면서 지주회사가 대기업집단 지배구조의 새로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새 정부의 강력한 재벌개혁 의지로 숨죽이고 있는 삼성 SK 현대 등 다른 그룹들은 LG그룹이 먼저 지배구조 문제에서 상당폭 진전한 것처럼 비치는 것이 마냥 부담스러운 눈치다. LG그룹처럼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현재처럼 총수의 ‘경영권’을 유지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주회사체제의 명과 암=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지주회사는 부채비율 100% 이하를 유지해야 한다. 또 자회사의 지분을 상장 및 등록기업은 30%, 비공개 기업은 50% 보유해야 한다.

또 자회사끼리의 출자는 금지되고 모든 출자는 지주회사 중심으로 이뤄진다. 반면 일반적인 대기업집단에 적용되는 출자총액제한, 계열사간 상호출자 채무보증 금지 같은 규제는 없어진다.

지주회사는 소유 및 지배구조가 상대적으로 단순 투명해지는 것이 최대의 장점이다. ‘구씨-허씨’ 양대 창업가문에서 대주주만 200여명인 LG그룹이 지주회사를 서두른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재벌개혁의 핵심적인 표적인 ‘순환출자’ 문제도 말끔히 털어 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그룹 형태를 지주회사체제로 전환하고 유지하는 데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다.

LG경제연구원 이승일(李承一) 선임연구위원은 “한국의 대기업이 지주회사로 전환하는 데 가장 어려운 점은 이미 상장돼 있는 자회사의 지분을 30, 50% 등 일정 비율까지 사들여야 한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이나 유럽의 지주회사들은 자회사가 비상장일 때 일찌감치 필요한 만큼의 지분을 확보해 지주회사로 출범했기 때문에 이 같은 문제가 없었다는 것.

또 자회사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유상증자 등에 참여하면서 부채비율은 100% 이내로 유지하는 것도 엄청난 부담이다. 지주회사 이사회와 자회사 이사회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구분해 규정하는 것도 쉽지 않은 작업이다.

▽부담스러운 다른 그룹들=메릴린치증권은 최근 펴낸 보고서에서 “LG의 출범은 한국 기업지배 구조체제에서 중요한 이정표”라며 “지주회사에 대해 시장이 긍정적으로 반응한다면 다른 재벌들도 지주회사체제로의 전환을 서두를 것”이라고 분석했다.

삼성 현대 SK 등 다른 주요 그룹들은 이런 시각이 부담스럽다. 특히 시가총액 43조8238억원(4일 종가 기준)의 삼성전자를 끌어안고 가야 하는 삼성그룹은 지주회사로 전환하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삼성SDI, 삼성전기 등 대형 상장사의 지분을 확보하는 데에만 수십조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LG는 개별 기업의 규모가 삼성에 비해 작고 핵심기업인 LG전자와 LG화학의 대주주 지분 비율이 높았기 때문에 지주회사로의 전환이 가능했던 것”이라며 “그룹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지주회사 쪽으로 몰아가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했다.

계열사와의 편법거래로 최근 구속된 SK그룹의 최태원(崔泰源) 회장도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염두에 둔 지분확보 과정에서 무리했던 것이 결국 문제가 된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현대차 코오롱 동부 등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염두에 두고 있는 다른 그룹들도 지분확보의 어려움 때문에 주춤거리고 있다.

▽진정한 대안되려면=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지주회사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대안이 될 수 있도록 정부에 제도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김석중(金奭中) 상무는 “한국 대기업들의 현실을 인정해 자회사 지분확보 요건과 지주회사 부채비율 요건을 완화하거나 각 그룹이 연차적으로 목표 비율 등을 정해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벌정책의 주무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의 입장은 다르다. 공정위 조학국(趙學國) 사무처장은 “자회사에 대한 지분을 낮추면 지주회사가 무분별하게 자회사를 늘려 경제력 집중이 심화될 수 있으며 소액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기도 힘들어져 현재로서는 요건 완화 등은 고려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재계와 정부의 지배구조 논쟁에서 접점을 찾기 위해서는 현실을 인정하려는 양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익대 선우석호(鮮于奭皓) 교수는 “정부는 기업의 지배구조를 건실하게 바꾼다는 미래지향적 시각에서 지주회사의 요건이나 연결납세제도의 지분요건을 완화해줘야 한다”면서 “기업들도 경영권과 핵심사업 모두를 갖고 가려 하기보다 일정 부분을 포기하더라도 정당한 경영권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중현기자 sanjuck@donga.com